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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Sep 29. 2023

이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애만 봐야 하는지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트림 시키는 게 어려운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부터 난 틀렸던 것이다)


1. 언제 할지 모른다. (보통 5분~10분 이내라고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록 안 하는 경우도 많다)


2. 이게 트림인지 그냥 숨소리거나 용쓰는 소리인지 확신이 없다. (이건 내가 트림을 할 줄 몰라서도 그렇지만, 실제로 애매한 트림도 엄청나게 많다)


3. 아기가 먹다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4. 아기가 아직 목을 못 가누기 때문에 목을 잡고 있느라 손목이 너무 아프다.


제일 어려운 이유가 3번과 4번이다. 3번은 이미 모유수유 편에서도 얘기했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아기는 툭하면 먹다 잠든다. 잠든 사람은 트림을 할 수 없다.(당연한말)


그리고 4번. 트림은 약간 몸을 C자 모양으로 구부려서 고개가 몸통 앞으로 좀 나와야 잘 되는데, 아기 고개가 못 버티고 푹 고꾸라지기 때문에 꼭 한손은 아기의 고개를 지탱해야 한다. 또 목을 조르면 안 되니까 턱, 그러니까 V라인 부분만 딱 잡아야 한다. 손목 아프다.


남편은 휴직하고서 머리를 한번도 안 잘랐다. 한번은 길러보고 싶다는데, 이상한 고집이다.


어깨에 고개를 기대게 하는 기본 자세(왼쪽)가 있긴 하지만 그건 신생아 때는 아기가 자꾸 잠들어버려서 잘 안 됐고 좀더 아기를 불편하게 하는 자세(오른쪽)가 잘 되다 보니 좀더 힘들었던 면은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자세가 아니면 이녀석은 트림을 하질 않는 것을!


트림을 잘 하는 자세도 아기마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아기라도 한동안 잘 하던 자세가 어느날 잘 안 될 때도 있고 그렇다.


어떤 때는 자세를 잡기도 전에 혼자 1분만에 트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10분 15분을 손목에 쥐나게 두드려도 안 하는 날도 있다.


그렇게 기약 없는 트림을 시키다 보면 지친다. 너도, 나도…….


어느새 나는 트림을 시키는 건지 그냥 내가 불안하기 때문인지 모를 무의미한 동작으로 아기 등을 두드리고 있고, 아기는 그게 잘 자라는 뜻인 줄 아는지 곤히 눈을 감고 잔다.


힘들어서 몇번 그냥 눕혀버리기도 했는데 그랬더니 두어 번 게워냈다. 사실 분수토가 아닌 이상, 그냥 게워내는 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게워내다 식도가 막힐 수도 있다는 ‘만에하나’스러운 말한마디에 또 세상 걱정되어 트림에 집착하게 된다.


신생아 때는 위가 작아서 2~3시간마다 배고파 하는데, 말이 2시간이지 정말 무한반복이다. 분유 한번 먹이는 데 10분~20분은 걸리고, 트림 시키다 보면 10분~20분 또 지나가고, 트림을 했든 안했든 어쨌든 곧장 눕히긴 좀 걱정돼서 소화 되라고 안고 있다가 겨우 눕히고 보면 또 2시간 지났다고 아기가 배고픈 울음소리를 준비하고 있다.


하물며 한번에 양껏 안 먹고 끊어 먹기라도 하면 고스란히 x2배가 된다. 트림을 또 시켜야 하니까!


더 안 먹는 줄 알고 기껏 트림을 다 시켜놨는데 또 배고프다고 울면 말이지……. 진짜…….언제 또시켜……. 트림 또 시키고 돌아서면 어느새 2시간이 되어 또 배고프다고 우는 것이다…….


그것이 무한반복…….




그래도 정말 시간이 약이다. 백일이 막 지난 지금은 목을 가누고, 수유텀도 3~4시간으로 늘었고, 나도 요령이 생겨서 저런 고생은 안한다. 요즘은 트림도 금방 하고, 안 해도 용감하게 눕혀버리기도 한다.


한창 신생아 때 써놓았던 메모를 다듬어서 쓰고 있는 지금은 트림이 그렇게 힘들었나 의아할 정도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는 얼마나 막막했었는지가 새삼 떠올랐다. 그때 쓴 메모엔 정확히 이렇게 쓰여 있다.


‘이렇게 그냥 100일까지는 모든 걸 포기하고 애만 봐야 하는지…….’


. 그때의 나에게 답장하자면, 맞는 것 같다. 그 시간이 지나니 지금은 진짜 좀 살 만하다. 그때의 나,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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