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리 Oct 11. 2023

2100년에 얘는 살아 있겠네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구의 어떤 곳에선 전쟁이, 어떤 곳에선 물난리가 일어나고, 어떤 곳에선 호수가 통째로 마른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로 느껴졌었다.


그런데 어느날 TV에서 2100년에 해수면이 얼마가 상승할 거라는 뉴스가 나오는데 남편이 말했다.


“어, 2100년에 얘는 살아 있겠다. 우린 그때까지 못 살 것 같은데.”


“어? 그러네?”


대답하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뭔가 막막하면서도 무서우면서도, 아무래도 내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을 저지른 건 아닐까……! 하며 가슴이 무거워졌다.



대학생 시절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도키오>라는 책을 굉장히 인상깊게 읽었다. 그리고 독서노트에 이렇게 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래에 행복하게 살 것이 예상되면 나는 죽어도 그 사람 인생이 이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행복.’


하도 이 책을 읽은지 오래돼서, 정말 이 책에 그런 문구가 나온 건지 아니면 자식을 구하고 죽은 부모의 마지막 말을 읽으며 내가 느낀 걸 써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부모가 이런 마음으로 아들을 구하는 장면에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감명받았다.


감명을 받았으면서도 사실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 거다. 지금까지 2100년이란 숫자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게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으니까.


비슷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나는 강호동이 나오던 때부터 1박2일을 빼놓지 않고 보던 애청자인데, 시즌 3에서 안중근 의사를 기리러 하얼빈에 갔을 때였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어렵다는 말에 차태현이 눈물을 훔치며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내가 죽어서 바로 자식을 살릴 수 있으면, 아마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죽을 거예요. 자식이 좀더 살아야 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분명 선생님도 그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내 자식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길 바라는. 아마 첫번째는 부모의 마음이지 않으셨을까…….’


나는 이 말에 깊이 감명받으면서도 ‘자식이 좀더 살아야 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된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좀 알 것 같기도 한 거다. 그냥…… 당연한 걸로 느껴져……. 나보다 아기가 더 살아야지. 당연히?


그런 기분들이 복합적으로 확 섞이면서 너무너무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기를 키우게 된 후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건 몇 가지가 더 있다. 사실 거창한 것도 아니다.


1. 동네에 킥보드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남자 꼬맹이들. 우리 아기도 저런 날이 오겠지 싶어 귀엽다.


2. 동네에 태권도복 입고 돌아다니는 아그들. 공원에서 농구축구 하는 꼬맹이들. 우리 아기도 공부만 하는 백면서생보다는 몸으로 잘 뛰어놀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건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해서 자꾸 보게 된다.


3. 뉴스의 수많은…… 꽃다운 청춘이 이런 저런 이유로 희생되었다는 소식들. 교통사고, 군대, 각종 범죄 피해. 그렇게 허망하게 스러지라고 20년을 애지중지 키운 게 아닐 텐데. 그런 뉴스에서 부모들이 절규하는 장면이 예전보다 훨씬 더 와닿는다.


갓 태어나 몸에 아무 힘도 없는 존재를 보고 있으면 마냥 짠하고 안쓰러운데, 그렇게 평생 키운 존재를 잃는다면 정말 가슴이 사무치게 아플 것 같다.



사실 나는 아기를 키우고 육아일기를 매번 쓰면서도 다른 아기엄마들처럼 아기 위주로 쓰고 있지가 않다. 가끔 이 지점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곤 하는데, 예를 들면 아기가 배가 아파서 저녁 내내 울었으면 아기 걱정이 아니라 내가 힘들었다는 얘기만 쓰고 있는 날 발견하는 식이다.


나같은 사람도 육아를 하면서 자식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게 만들으려고, 낳아놓고 무책임하게 살아가지 말라고 인간을 아주 작은 아기로부터 시작하게 만든 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단순히 ‘내 애’를 낳은 게 아니라, 이 애가 살아갈 100여년의 시간을 새로 낳은 건 아닐까. 없던 시간을 발생시켜버린.


그런 생각을 하면 아기를 낳아 키우고 있는 일이 아득하게 두려워지기도 한다.


너무 작고 연약한 존재는 냉혈한도 녹게 할 테니까


이전 13화 엄마도 나를 이렇게 귀여워하면서 키웠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