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가르텐을 거닐다
언제나처럼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다. 미리 사놓은 식빵을 굽고, 크림치즈를 곁들이고, 사과와 샐러드와 씨리얼에 커피까지 함께하는 아침. 저렴하기에 부담도 없고, 그러면서 든든하기도 해서 만족스러운 아침이다. 독일에 온 후로 먹게 된 이런 아침에 적응이 되면서 아침 시간이 좀 더 상쾌해졌다. 며칠에 한 번씩 아침과 저녁을 위해 장 보는 시간도 즐겁다. 수인이 덕분에 새로운 즐거움들을 알아가게 된다.
숙소에서 나와서 10분~15분 정도 걸어가면 동물원 역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엄청 거대한 공원이 <티어가르텐(Tiergarten)>이다. 원래 공원을 좋아하지만 이곳은 내가 다녀본 모든 도시의 공원 중에서도 압권이다. 거대한 규모도 그렇고, 그런 공원이 도시의 정중앙에 위치해서 여기저기로 연결되는 것도 편리하고, 머무르기보다는 걸어 다니도록 되어있기에 끊임없이 걷게 되는 것도 좋다. 산책을 좋아하는 우리에겐 그야말로 완벽한 공원이다. 베를린의 가을은 뮌헨보다도 훨씬 짙다. 아무래도 더 북쪽에 있어서 그런가. 덕분에 눈이 호강했다. 이렇게 멋진 계절에 이렇게 멋진 공원을 산책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수인이도 아빠 엄마와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그렇지는 못해서 아쉽다. 그래도 유모차 안에서만 감상하라고 하는 건 왠지 미안해서 일부러 힙시트에 태워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좋은 공기 마음껏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도 마음껏 느끼기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수인이도 좋은지 가끔씩 "흐응 흐응" 하면서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귀여운 것. 잘 다녀줘서 고마워.
이날은 하루 종일 티어가르텐에 있었다. 베를린이 좋은 점은 티어가르텐이 딱 중앙에 있기에 그곳에만 있어도 독일 의회, 브란덴부르크 문 등 유명한 명소들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어딘가로 이동하고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산책을 계속하다 보면 전승기념탑도 나오고, 독일 의회도 나오고, 끝에는 브란덴부르크 문도 있다. 마치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듯한 착각을 받을 정도. 그래서 산책 내내 더 기분이 좋았나 보다.
날씨는 계속 좋다. 가을이라 하늘이 유독 높고 파랗다. 기온도 조금 더 올라간 느낌이라 뉘른베르크에서 보다 더 수월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중간에 수인이가 유모차에서 잠에 들면 보통 우리도 어딘가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는데 이날은 계속 걸었다. 아무런 부담감 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산책하는 좋은 기분을 끊기가 싫었나 보다. 가을에 오길 참 잘했다.
"좋지?"
"응. 정말 좋아."
우리 부부 사이에는 이런 대화 후에 한참 동안 편안한 정적이 이어지는 패턴이 계속 반복됐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함께 공유하는 것 그거 하나로 충분하지. 걷고 걸을 뿐.
한국에 돌아가서 약 2주 후에 수인이 돌잔치가 있을 예정이다. 보통 돌잔치를 하면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도 찍어주고 하는데 우리는 독일에 오면서 그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독일에서 예쁜 사진을 최대한 많이 남기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은 날씨가 흐린 적도 많았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이동에 신경을 많이 쓰는 터라 돌 기념사진을 많이 찍어주지 못했는데 베를린에서는 조건도 좋고 여유가 생긴 만큼 수인이 독사진들도 찍어주기 시작했다. 시작은 독일 의회 앞이다.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겠지? 수인이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이 날 찍은 사진은 결국 돌잔치의 메인 사진이 되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산 곰돌이 모자가 귀여움을 더해준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나는 역시 아빠. 예보에 따르면 앞으로도 날씨는 계속 좋을 예정이니 수인이에게 사진 선물을 더 많이 남겨줘야지.
수인이는 겁이 많다. 인형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꽃이나 나무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보다 기거나 걷는 것도 더 느린가 보다. 처음에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더 이상 걱정되지 않는다. 자연스레 하게 되겠지 뭐. 티어가르텐에서는 수인이도 이것저것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잘 놀아서 참 다행이다. 아빠 엄마처럼 자연을 좋아하는 것일까. 덕분에 더 보람찬 하루.
산책은 즐겁다. 완연한 가을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리고 베를린이라면 산책이 더욱 즐겁다. 사람마다 다르게 남겠지만 우리에게 베를린은 언제까지나 티어가르텐과 가을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