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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오 Apr 30. 2021

[단상] 휴머니즘적 고찰과 자본주의적 결말

 갓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쯤으로 기억하는, 어렸을 때의 이야기. 

 

 식당을 갈 때마다 식사가 끝나고 물티슈로 앞을 정리하는 엄마를 봐온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어느 정도는 뒤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편이다. 가끔 왜 그걸 굳이 치워야 하는지 물어보면 엄마는 이러면 정리하기가 더 쉽잖아, 라고 대답하시곤 했다.


 "왜 그걸 너가 정리해?"

 어느 날 친구들과 밥을 먹고 여느 때처럼 뒷처리를 하는 나를 재촉하며 친구들이 건넨 말이었다. 어 그냥.. 어버버 하고 있으니 친구 중 하나가 이야기했다. 

 "야, 그거 하라고 우리가 돈내는 거야."

 머리가 댕-하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으니 분명 어린 나한테는 큰 깨달음이었나 보다. 


 그 큰 깨달음을 들고 나는, 어렸던 나는, 

 다음 번 가족과 식당에서 식사 후 여전히 앞을 정리하는 엄마에게 마치 뽐내듯 이야기했다. 

 "엄마, 그걸 왜 굳이 치워. 그런 걸 하라고 우리가 돈을 내는 거잖아." 

 우리 엄마는...

 나를 잠깐 쳐다본 후 대꾸조차 제대로 해주시지 않았다. ㅎㅎㅎ 결국 앞 정리를 끝내고 나오면서 나는 계속 곰곰이 생각했던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난 나의 답을 생각해 냈는데...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나름의 단호함을 담아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돈을 내니까 저 사람의 일을 굳이 늘리는 게 맞는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면 되지."




 나는 요즘 돈이 참 좋다. 돈이 참 좋은 나이다. 

 그리고 동시에 참 무섭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굳이 한 번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다만 돈과 물질적 가치에만 몰입하는 태도는 쉽게 다른 중요하거나 당연해야 할 것들을 간과하게 만든다. 어떤 것 보다도 쉽게 중심을 흔들고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는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적어도 해봄직한 세계가 된다. 

 사람들은 돈을 위해 짓는 강력 범죄에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내가 지불한 돈에는 쉽사리 너그러워 지지 않는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돈보다는 강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더 잘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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