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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오 Apr 29. 2021

[단상] '살아 돌아온' 자의 이야기

< 살고 싶다는 농담(허지웅) > 을 읽고


 (내가 모르는) 사람을 평가하는 일과 그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의 면면이나 주제의식에 대해서도 깊게 공감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허지웅 작가라는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티비 프로그램 속에서였는데, 거기 나오는 작가는 나한테는 참 별로인 사람이었다.

 썰과, 썰에 대한 의견을 덧붙이는 프로의 특성 때문도 있었을 것이고, 하여튼 지금은 구체적인 이유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난 뭐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혹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몇 년 후 '그 사람'이 아주 힘든 병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본 것 같고, 그러고도 시간이 흐른 뒤 매체에서 작가의 토막글을 접할때마다 공감가는 부분을 항상 발견하게 되고, 글을 쓰는 방식도 좋아 관심만 있다가 이제서야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챕터부터 문장 하나하나에 놀랐다. 경험을 사유로 끌어와 해석하는 방향이나 방식이 나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 심지어 각 장의 키워드들도 내가 꼭 한 번은 깊게 생각해 본 내용들이어서 더더욱 신기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의 생각 자체에 놀란 것 보다도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부정적으로 평가내린 사람이 글로, 글 이전의 그 생각으로 나를 이렇게 사로잡을 수 있음이 놀라웠다.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 만큼은 사실이다. (본문)

 일단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악성림프종 투병이라는,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만한 경험을 했다. 나도 작년 한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병과 싸워봤기에 건강하던, 그리고 건강을 자부하던 사람이 아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한 사람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도.

 작가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그 생각이 더욱 강화된 것인지 혹은 생각은 같으나 태도가 달라진 것인지, 정말 깊은 곳에서 어떤 변화를 체험한 것인지는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글쓴이의 진정성을, 수많은 통증과 싸워 이겨내야만 혹은 버텨내야만 했던 밤들을, 포기의 문턱까지 가 보았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에게 병원은 꽤 익숙한 장소다. 그래서 어떤 순간부터 늘상 생각하던 것이기도 하고, 내 개인 SNS에도 이미 남겨놓았던 내용이 있다. '참 신기하게도 병원은 가장 살고 싶은 곳이다. 평소에는 희박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존의지를 확인하게 되는 곳.'

 이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은 가장 살고 싶지 않았을 때의 경험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 돌아오는지' 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삶은 결정이다.


 물과 바람에, 각종 마찰에 마모되어 둥그러진 돌만이 낼 수 있는 광채가 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둥그러져 가고 있다고 믿는 편인데, 마침 생의 커다란 변곡점 앞에 서있는 나에게 이 책은 작은 위안이 되었다. 살아낸다는 결정을 하고, 진짜로 살아내는 일. 존버라는 단어가 진짜, 진짜 생의 본질임을 알아간다. 그게 아주 널리 농담처럼 진담으로 쓰이는 일은 조금 서글프지만.


회복한 이후에 쓴 모든 글이 그랬다.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불행하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안 그래도 상처받을 일투성인 세상에 적어도 자초하는 부분은 없기를 바란다. (본문)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구나, 이 사람. 글의 면면에서 생들을 향한 그의 애정이, 겸허함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여전히, 그를 모른채로 그를 평한다. 고작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다만 언제나 뭐든 고아처럼 혼자 살아내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는 그가 조금은 덜 외롭길 바라며. 상처받은 우리가 앞으로는 조금 덜 외롭길 바라며.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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