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 3부작 - (2)
* 주인공 이삼오 : 살다보니 살아진 서른 중반 회사원. 성은 이 씨, 이름은 삼오.
삼오가 생각하기에 이 끝나지 않는 세대담론은 각자의 의문에서 오는 것 같다.
그래, 우리 모두는 나는 안 그랬다.
‘나’는 저렇게 어른 앞에서 내 의견을 여과 없이 표출한 적도,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도,
공동체보다 자기자신을 우선한 적도 없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공손한 아랫사람이었으며,
나의 감정과 욕심을 참아내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 왔기 때문에...!
저 녀석들이 마음에 안 찬다.
하지만 동시에 시대는 변해가고 나는 그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니까,
에휴, 한숨을 내쉬며 오늘도 한 발 더 포기한다.
삼오는 반대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럼 ‘기성세대=꼰대’는 누가 만들어 낸 것인가?
<90년생이 온다> 라는 책과 함께 '라떼는'이라는 단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사회 초년기 때 삼오는 "삼오가 90년생이야? 어때 삼오가 봤을 때 나는 꼰대야?" 라는 질문을 밥 먹듯이, 아니 밥 먹을 때마다 듣곤 했다. 당시 옆에 있던 선배 중 하나의 대답은 “그런 거 물어보는 게 이미 꼰대에요.” 였는데.
삼오는 오늘 다시 한 번 그 때가 떠오른다.
관심 꺼도 될 일에 왜 굳이 질문을 할까.
이 정도면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왜 지적하고 문제 삼을까.
정해진 답만 써내면 되는 걸 왜 구구절절 덧붙여야지 정답이라고 할까.
우리는 삶을 사는 목적도 방향성도 이미 너무나 명확하다.
그저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 선택할 뿐이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한 번 더 묻는다.
“이렇게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나는 안 그랬는데 vs. 굳이 왜 저러는 거야?
이 두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는 MZ나 비MZ가 있을까?
“당신이 안 그랬다고 나도요? 그게 합리적인가요?”
“지금 보면 ‘굳이’ 같지만 다~ 이유가 있는건데. 조금만 지나보면 알거야.”
질문도, 대답도 모두 다 말이 된다.
그런데 왜 둘은 끝없이 싸울까.
그리고 삼오는 왜
‘너 엠지야?’ 에도 발끈하고
‘너 꼰대야?’ 에도 발끈하게 되는 걸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