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과 소통하기
여느 때 처럼 아무 생각없이 아들 방문을 휙 열고 들어갔다. 여기저기 옷이며 가방이 널려있는 방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쏟아지는 잔소리 퍼레이드. 주절주절 이야기 하는데 쳐다도 안보고 대꾸도 없는 녀석.
너 또 누구랑 카톡하길래 그렇게 실실 웃으면서 폰만 보냐?
어라, 그런데 뭔가 좀 기분이 이상한데..
'네.......네.....네....'
'???..... (헉!! 입틀막)'
누군가랑 통화중이었던 것이다. 화들짝 놀래서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놀래서 쳐다보는 나에게 그제서야 전화기를 살짝 보여준다. 000 선생님.
내가 무슨 얘기 했었지? 얘기 다 들렸겠네. 실수 한 건 없나. 아아, 우아하고 차분한 내 이미지!
하얗고 동그란 얄미운 녀석, 버즈라는 저것 때문이다!!
길에서 혼잣말 하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 아직도 나는 적응이 잘 안되는 문화이다. 아니 전화를 하려면 수화기를 귀에 대고 해야지. 아주 가끔 에어팟을 꽂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화들짝 놀라서 폰부터 귀에 갖다 대는 나.
나에게도 '마이마이'가 있었지. 손바닥 만한 카세트 테잎이 쏙 들어가는 귀여운 그 친구가 생겼을 때 어찌나 신이 났던지. 아마도 중학교 입학 선물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열심히 듣기 시작한 것도 그때 쯤 부터였지.
사실 나는 길에서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었다. 중딩 고딩 때에도. 너무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길에서도 듣기는 했지만, 혼자 나만의 세계에 빠져있기 보다는 길가의 소음,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두리번 거리면서.
나는 전형적인 E 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해서 E 인것은 아니다. 그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욱 즐겁기에. 하지만 앞에 나서는 것은 두려운 소심한 E. 이런 저런 세상 일에 관심이 많고 항상 궁금해서 기웃거리는 편. 그래서 길거리에서 혼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 나만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아 답답해서 싫었다.
그래도 독서실에서 집에 오던 늦은 밤에는 무서워서 신나는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테잎이 늘어지도록 음악을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을 수 있지. 집에서도, 길을 갈 때도 쉬지 않고 들었던 것 같다. 음악의 세계로 빨려들어간다는게 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요즘도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는 길에서 아침 새소리와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좋아 들으면서 걷는다.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뽀드득 뽀드득 새하얀 눈을 제일 먼저 밟을 때 나는 소리. 아침의 소리가 좋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에어팟을 잠시 사용했던 적이 있는데 자격증 공부를 하던 시절.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출퇴근길 걷는 시간이 아까워서 귀에 꽂고 강의를 들었다. 그 이후로는 어느 서랍속으로 들어가 고이 잠든 나의 에어팟.
그런데 이 녀석은 나랑은 좀 다른가보다. 생일선물이었던가, 버즈가 생긴 이후로 저 동그랗고 하얀 얄미운 녀석은 몸의 일부처럼 귀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집에서도 항상 꽂고 다니고 심지어 엊그제는 아침에 깨우러 가보니 잘때도 꽂고 자더라는.. 아우 답답해, 징그러운 녀석. 하루에 나하고 마주하고 앉는 시간이 30분도 채 안되는데 내 얘기도 안 들어주고, 묻는 말에 답은 당연히 없고. 심지어 본능적으로 엄마의 잔소리 메들리가 시작되는것을 느끼면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서 노이즈 차단을 해버리고 만다. 듣고 싶은 것만 듣겠다 이거지. 대체 하루종일 뭘 그렇게 들어대는지.. 너 그러다가 청력 떨어진다. 엄마처럼 나이들면 듣고 싶은 소리도 잘 안들린다고.
일요일 저녁, '내일 점심은 냉장고에 있는거 꺼내 먹으면 돼' 라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또 문득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저녀석.. 오른쪽 귀에 버즈가 장착되어 있다. 이제는 한 쪽만 꽂고 엄마 얘기를 듣는 척 하면서 차단하는구나.
'ㅗ. ㅏ. ㅜ. ㅜ. '
(콩나물국)
저녀석은 듣지도 않는데, 나도 소리내는 것이 소모적으로 느껴져서 입모양만 크게 오물거렸다. 마치 옛날 가족오락관의 '이구동성' 게임처럼.
'무나무울?'
에효.. 저 하얗고 동그랗고 얄미운 녀석.. 내 언젠가 저놈 귀에서 저것을 속시원히 쏙 뽑아버리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