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망쳤던 건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조금 더 깊숙한 곳에 숨겨놨던 이야기다.
그런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 반응이 나올 그런 깊숙한 이야기 말이다.
내가 망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직장인이 된 지 5년쯤 되었던 때였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내가 맡은 업무는 전적으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구조였다.
당연히 사수는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은 다른 부서들의 시작점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해야 했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내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엔 벅찼다.
회의 중에도, 일하는 중에도 나를 찾아 묻는 사람이 많았고,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의 요청에 응답해야 했다.
그때마다 업무 흐름이 끊겼고, 그 과정에서 실수가 생겼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자책했고,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실수를 줄이려고 출근하자마자
우선순위를 1부터 10까지 정하고 움직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고 없이 들어오는 요청들은 그 우선순위를 계속 밀어냈다.
내가 하는 일은 일러스트 히스토리처럼 자동 저장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방해받고 돌아오면 내가 뭘 하다 말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것들을 자꾸 놓치게 됐고, 결과물은 완벽에서 멀어졌다.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수록 사람들은 더 자주 나를 불렀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A, B, C 부서에서 동시에 나를 찾는 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럴수록 나는 내 일보다 그들의 요청을 우선시하게 됐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도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내 업무는 항상 중간에 끊겨 있었고,
과거의 일까지 다시 꺼내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마치 글을 쓰다 중간에 결론부터 써버리고, 나중에 앞 내용을 채워 넣는 느낌이었다.
디테일한 설명을 위해 더 자주 불려 다녔고,
내 일은 끝나지 않았으며,
완성해도 또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점점 '적당히' 하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그로 인해 실수는 더 늘었고, 의욕은 더 줄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불면증이 찾아왔다.
극도로 예민해졌고, 집에 와서는 부모님에게까지 날을 세우는 나를 보게 됐다.
회사를 벗어난 곳에서조차 짜증을 내며 방어적으로 굴었다.
잠들었다가도 자주 깼고, 몸이 떨면서 자는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사자인 나는 전혀 기억이 없었지만, 그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거다.
그렇게 온전하지 못한 평일이 반년쯤 흘렀을 때쯤, 나는 생각했다.
"아, 나 지금 망가졌구나."
회사에선 나를 위한 말은 한마디도 못 하고,
집에서는 아무도 말을 못 하게 만드는 짜증으로
나를 지키려는 이중적인 모습.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과에 상담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단단할 때, 그 안에서 누군가에게 줄 여유도 생긴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