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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복원하시겠습니까? "Yes"

무너졌던, 나를 다시 세우는 이야기

by DayRewind

병원을 가기로 결심한 그날 이후,


문을 여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병원과 심리상담 중 어디를 갈지 고민하며

하루 종일 리뷰를 들여다봤던 걸 제외하면


나보다 먼저 상담을 받아본 가족이 있었기에

정신과에 간다는 것이 엄청난 결단이라기보다

이제는 충분히 힘들었고

도움을 받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었다.


병원에서의 검사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었다.

A3 용지 3~4장 분량의 심리 검사지를 받았고,

1번부터 5번까지 자신의 상태에 맞게

체크하는 방식이었다.

마치 회사 입사 전 성향 테스트나

병무청의 건강 설문 같기도 했다.

작성 후에는 또 다른 방으로 이동해

손목과 발목에 장치를 착용하고

5분 정도 앉아 신체 긴장감 테스트를 진행했다.

신기함과 긴장감이 뒤섞인 상태로 검사를 마친 후, 이름이 불렸다.


"DayRewind님, 들어오세요."


인자한 인상의 원장님이 앉아 계셨고,

'무엇이든 말해도 괜찮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검사 결과지를 살핀 후

원장님은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잠에서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렵고,
짜증이 많아졌다고 하셨죠?"


수치상으로 내 정신적 예민함과

육체적 긴장감이 비슷한 수준으로,

심각하진 않지만 평상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수면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고,
일의 결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고요."


진단과 함께 처방받은 조언은

스트레스를 받을 땐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별것 아니라고 여겼지만,

단순한 움직임에 집중함으로써

머릿속 복잡함을 끊어내라는 의미를

나중에 깨달았다.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전달해 준 이야기


"정신적인 요소도 유전이 될수 있다"


'유전?'이라는 단어가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자극에 노출되며

비슷한 가치관을 나누며 살아온 가족이라면

비슷한 약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며 납득했다.


처방된 약을 먹고 며칠이 지나자,

내 안의 감정들은 조금씩 잔잔해져갔고

마치 오즈의 마법사 양철 나무꾼이 된것 같았다.


잠에서 깨는 횟수도 줄고

수면의 질이 안정되면서

업무 중에도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약 하나로 모든 게 바뀐 건 아니었다.

병원에서 반복해서 말했듯이

결국 중요한 건

나의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을 내려놓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 '내려놓음'은 단어처럼 쉽게 행해지지 않았다.

병원을 거의 1년 가까이 다니며

어느정도까지는 좋아졌지만

그 이상의 회복에는 도달하지 못하던 와중에

완벽한 회복의 실마리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찾아왔다.


바로

'내 곁의 한 사람이 만들어준 감정의 안전지대'로 인해

완전한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내가 흔들리고 있을 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
약으로도 잠재워지지 않던 감정의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천천히 나를 복원시켜줬다.


나는 항상 말할 때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며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단어 하나를 고를 때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를 먼저 시뮬레이션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어떤 말이든 괜찮아. 눈치 보지 말고, 마음 가는대로 말해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점점 내 생각을 편하게 말할 수 있었고

잊고 있던 나의 모습까지 꺼낼 수 있게 됐다.

그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그녀 덕분에

나는 점점 단단해졌고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나 자신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를 더 좋아하게 되자

잊고 있던 어린 시절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상황극과 성대모사'였다.

동갑내기 사촌과 침대 위에서 자지러지게 웃던 그 기억처럼 지금은 그 무대가

여자친구 앞이 되었다.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나면 꼭 상황극을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

그런 나를 편하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내가 복원됐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그녀는 지금도 가끔 이렇게 말해준다.


"자존감이 너무 높아도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아. 지금 그대로 살아."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는 말 한마디가,

내 안에 단단한 나무를 심어준 씨앗이 되었고

나는 지금도 그녀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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