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한두 해가 지나갈수록 '팔자(八字)'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올리신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다 내 팔자가 이런 거라서 그래. 남편 복도 없지 자식 복도 없지. 난 재복도 없어. 그냥 이렇게 살으라는 팔자야."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건사고를 보면서도 팔자를 입에 올리신다.
"저 사람은 저렇게 살다 가라는 팔잔거야. 어쩔 수 없어."
팔자이기 때문에, 혹은 다른 표현으로 그렇게 살라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힘든 사람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어찌 보면 참으로 억울하고 화나는 사고방식인데 또 어찌 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하다. 편해진다는 것은 체념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맥주 3병을 마신다. 최근에는 4병으로 늘어났다. 술이란 것이 마시면 늘게 마련이니까. 건강을 염려하며 술을 줄이라는 자식의 말처럼 그녀의 화를 돋우는 것도 없다.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것이 맥주야. 그냥 날 놔둬.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해."
술을 마시고 건강을 해치는 것도 어쩌면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팔자려니.
가끔 정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실에 의해 살아지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더욱 수렁으로 빠지는 사람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술술 풀리는 유형.
내 친구가 후자의 유형이다. 그 녀석은 뭘 해도 잘 풀린다. 부모를 잘 만났고, 그 인맥으로 고생 한번 해본 적 없고 경제적으로도 늘 풍요롭다. 한 번은 사주를 보러 갔더니 사주쟁이가 그랬다더라.
"아가씨 결혼하면 연락 줘요."
"왜요?"
"나도 축하해주러 가게. 그 복 좀 나눠줘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 팔자는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가끔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쉬지 않고 걸어가곤 있지만 그 방향성을 잃어버렸을 때.
그럴 때 엄마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팔자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팔자.
다시 말하면 운명쯤 될까?
나는 이렇게 살 운명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운명. 혹은 운명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
뭐가됐든 열심히 살자.
그러면 그것이 운명이 됐든 아니든
뭔가 길이 보이겠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