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후배 정에게 전화가 왔다. 지인을 통해 내 임신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나의 결혼식 전날 "내일 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 떨린다"며 혼자 호들갑을 떨던 녀석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임신 소식에 한층 보강된 소란을 떨고 있었다.
정의 말처럼 이번 임신소식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큰 놀라움을 안겼다. 첫 번째는 결혼 소식이었고, 두 번째가 임신소식.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삶을 살아선 안된다고 하던데 나는 한 입에서 나온 말을 부침개 뒤집듯 바꾸며 살고 있는, 본의 아닌 전문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결혼 전 난 자칭 비혼주의자였다. "요새는 비혼이 대세"라며 모든 남녀관계를 뿌리치며 덩달아 친구들에게 비혼의 장점을 설파하고 덩달아 비혼을 고집하는 친구들과 함께 늙어가자는 약속을 해왔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비혼주의자'라는 말을 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연애 3개월 만에 결혼을 준비했고, 이제는 결혼 4년 차인 구 비혼주의자, 혹은 '변절한' 비혼주의자가 되어버린 기혼여성이 됐다.
결혼해서도 아이 계획을 묻는 사람들에겐 정말 명확하게 말해왔다. "내 인생에 아이는 절대, 영원히 없을 거"라고.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시어머니가 자녀 계획을 물어왔을 때도 "돈이 없어서 못 낳을 거 같아요"라고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계획 없이 이뤄진 첫 임신은 술이 힌트가 되어 알게 됐다. 전날 오래간만에 고교 동창과 소주를 많이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날 오후 술이 다 깼을 시간이었는데 밝은 해를 바라보며 난 계속해서 구토를 했고 무언가 의아했던 남편이 권한 임테기에서 두줄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그날 구토는 숙취가 아닌 입덧이었다는 것이다.
".. 두 줄 이야?"
평소 '임신한 아내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던 착실한 남편은 눈물을 흘리려 노력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변기를 잡고 있었다. 임테기 두줄의 기쁨보단 눈 앞의 구토 때문에 눈물이 찔끔 나왔던 그 순간이 나의 첫 임신 순간이었다.
남편이 임신을 축하하며 건넸던 꽃.
그리곤 2주가 지난 임신 7주에 이르러 계류유산을 했다. 아기집에 아기도 있었지만 심장이 뛰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보다 짧고 허무하게 첫 번째 임신이 마무리됐다. 내 작은 자궁에 잠깐 동안이지만 심장이 뛰었던 생명이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충격이었다. 고작 2주 동안의 '엄마'에 불과했지만, 임신 사실을 알고 행복해하지도 않았지만, 유산 판정을 받은 나는 사형집행을 받은 죄인처럼 의사 앞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그 눈물은 시작에 불과했다. 난 고장 난 기계처럼 거의 한 달을 이유모를 눈물을 흘리며 보냈다. 누군가 날 툭하고 건드리면 바로 눈물이 후드득 하고 떨어졌다. 침대에 멍하니 있다 보면 괜히 눈물이 흘렀고, 그럴 때면 난 남편 바리를 찾아 더 서럽게 울었다. 바리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대신 날 위로하는 쪽을 선택했다. 수술로 상처 난 건 자궁이었는데, 작은 심장을 보낸 내 심장이 그보다 더 쓰리고 아팠다.
유산 후 엄마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고작 2주였는데. 다만 준비되지 않았던 부모라는 입장에 대해 보다 생각하게 됐고, 그때부터 난 또다시 과거를 부정하는 프로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했다. '절대'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