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임산부가 되고 싶은데요

전 프로 거짓말쟁이 입니다만, <12>

by 유스

요즘 최대 관심사는 몸무게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무게를 재고 체온을 측정한 뒤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예전에는 없던 부지런이다.


임신 전 최대 50kg까지 나갔던 몸무게는 임신을 하고 46kg로 떨어졌다. 토덧을 하는 임산부보다는 체중 변화가 적은 편이다. 나는 마냥 입맛이 없고 소화가 되지 않는 체덧으로 꽤나 입덧을 조용히 지나갔다. 신기하게도 12주가 딱 된 순간 입덧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화는 잘 되지 않아 많이 먹는 건 두렵다.


아침에 몸무게를 잴 때면 채소를 포장하는 할머니의 정확한 눈대중처럼 내 몸무게를 대략 알수 있다. 배가 묵직하면 49kg대, 묵직하긴 하지만 그래도 허기가 조금 진다면 48kg대, 묵직함이 별로 없다면 47kg대이다. 오늘 아침엔 47.4kg를 찍었다. 어제 저녁 반찬은 오이와 상추였다.


임신을 하고 몸무게에 상당히 민감해졌다. 몇 달간 매일같이 체중계에 올라가는 건 살면서 처음이다. 엄마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 기록하기 시작했던 체중은 하루가 다르게 무언의 압박이 되가는 것 같다. 이런 압박은 임신 초기부터 살이 많이 쪄서는 안된다, 뚱뚱한 임산부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에서 비롯된다. 적당히 살찐 임신부가 되고 싶은 건 역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탓이다.


나는 길다란 젓가락 같았던 아버지를 닮았다. 마른 체형이지만 먹는 만큼 살이 찌는데, 평소 살이 안 찐다는 건 잘 먹지 않아서이다. 타고나길 위가 작다. 나의 엄마 영도 소식주의자다. 일반 식당 공깃밥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이 우리 모녀의 한 끼 식사량이고 육식보단 채식을 선호하니 살이 찌는 것이 더 의아한 셈이다.


오늘은 남편 바리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리는 “파스타 같은 건 어때?”라고 제안했지만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나는 “남들은 대체 뭐 먹고 산데? 외식하면 뭐 먹지?”라며 어제 저녁식사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결국 집근처 시장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을 찾았다. 텔레비전 출연을 한 맛집이었다. 과연 맛있었다. 딱히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반 그릇 이상을 먹었다. 양이 훅 줄어든 그릇을 보고 내일 몸무게를 예측해본다. 아마 49kg대 일 것이다.




몸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의 난 거식증이었다. 병원에 가본 적은 없어 전문의의 진단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분명한 거식증이었다. 증상은 열여덟부터 나타났는데 당시의 난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사람과의 교류도 많지 않았고 가족과의 관계도 좋았던 것 같지 않다. 매일 밤 진한 볼펜으로 써내려간 일기장은 늘 눈물 방울로 얼룩졌고, 번져가는 희미한 잉크처럼 나라는 존재도 부연해졌다.


그때부터였다. 밥을 먹지 않았던 것이.

거울 속의 나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갉아먹기 바빴다. 엄마 영이 내게 제발 밥 한 숟가락만 먹자며 방을 쫓아다니며 사정했지만 먹지 않았다.

“살 빼야 해.”

단호하게 이 말만 반복했을 뿐이다.


당시 몸무게를 주기적으로 달아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한번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161cm 키의 나는 38kg였다. 아동복이 몸에 맞았을 정도로, 내겐 뼈와 최소한의 지방만이 남아있었다. 신선한 영혼과 삶에 대한 의욕이 빠져나간 가벼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난 다시 입맛을 되찾았다. 내게 할 일이 생기고 타인과 많은 교류를 하면서 그동안 먹지 못했던 것들이 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혼자 식탐을 부렸고, 심지어 무척 더러운 대학교 화장실에서조차 혼자 게걸스레 빵을 먹기까지 했다. 거식은 식탐이 되어서 돌아왔다. 다행히 그런 불균형적인 식습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소심하게 사무실 화장실에서 찍어본 '주수 사진'.


많은 임산부들이 ‘주수 사진’을 기록한다. 실루엣을 드러내는 착 달라붙는 원피스 혹은 탑과 바지를 입고 배의 크기를 매주 기록하는 것이다. 소심한 나는 카메라를 꺼내는 대신 까맣게 꺼진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내 볼록한 배를 살핀다. SNS에 들어가 나와 똑같은 주수의 산모 배를 검색하며 화면 속 내 배와 비교한다. 이 볼록한 배는 음식에 대한 탐욕보다는 점점 단단해져가는 아가의 흔적일거라 믿고 싶다. 그것이 올바른 생각일 것이고, 그래야만 38kg대의 삶을 살던 과거의 나로 되돌아가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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