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이 엄마 잘못인가요

전 프로 거짓말쟁이 입니다만, <3>

by 유스

"이 사람 블로그 봐봐. 우리처럼 계류유산으로 아이를 보내고 그때부터 계획해서 1년 안에 임신에 성공했대."


남편은 부지런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았다. 그의 휴대전화 속 인터넷 검색어에는 계류유산, 유산 후 임신, 임신하는 방법 등에 대한 기록이 가득해졌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원했던 남편은 나의 전격적인 변화에 크게 고마워했다. 그는 내게 단 한 번도 아이를 강요한 적이 없었고 내가 싫다면 아이가 없는 인생도 괜찮다고 해왔던 남자였다. 물론 꿈을 물으면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내 변화에 맞춰 우리 둘은 틈날 때마다 임신하는 방법을 찾아보며 부인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결혼 후 철저히 해오던 피임도 끊었다. 왜 내가 그때 피임을 했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사실 내가 저질러온 거짓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상황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해 미리 선수를 쳐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혼을 못할 것을 가정해 '비혼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고, 아이를 갖지 못할 것을 가정해 '무출산'을 외쳤다는 말이다.

실은 결혼이 매우 하고 싶었지만 30대 중반이 가까워지면서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아 더욱 열심히 '비혼주의자'를 외쳤던 것이 내 말의 언저리에 감춰진 진실이었다.

또 원래부터 부인과 건강이 약했던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할 것 같아(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매우 크지만) 미리 '무출산'을 외쳤던 것 역시 내 말에 감춰진 진실이었다. 첫 번째 유산 이후 그렇다고 지인들에게 '나 임신 준비 중이야'라고 공언하진 않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건 우리 부부만이 아는 은밀하고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한 해가 마무리 되던 날, 남편과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첫번째 아가를 보내줬다. 잘 가!



유산 사실이 알려진 후 주변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날 가엾게 보고 측은해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전화로 유산 사실을 알게 된 시댁의 식구도 꽤나 안타까워하셨다.

"에휴. 어쩌다가... 그러니까 새 아가가 몸이 약해서..."


유산 사실을 양가에 알리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유산이 '내 탓'이 되는 그 순간 말이다. '엄마가 몸이 약해서, 엄마가 몸을 잘 관리 못해서'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듣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산부인과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고령 산모'이니까.


시댁 식구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던 남편 바리는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식구의 말을 곧바로 정정했다.

"유산의 이유는 다양해요.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어요. 제 정자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커요."

정말이다. 유산의 이유는 다양하다. 유산 당시 담당 의사 역시 이유를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어찌됐든, 당신의 정자 탓이라고 해줘서 고마워 남편.


몇몇 지인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며 날 위로해왔다. 그런 연락을 받으며 내가 위안이 됐을까? 아니 오히려 의아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한 번도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걸. 그냥 좋지 않은 상황이 내게 펼쳐진 것이 억울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사회가 유산마저도 엄마의 잘못으로 보는 건가. 난 순한 이들의 그 따뜻하고도 애잔한 위로에서 착잡함과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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