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위안, 그 언저리

전 프로 거짓말쟁이 입니다만,<4>

by 유스

살다보면 근거없는 확신을 할 때가 있다. 마냥 기분에 취해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하지만 이처럼 근거없는 확신과 분위기에 취한 긍정은 때론 맹렬한 비난과 아픔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이들의 간극은 너무 커서 간극의 세계에 발가락 하나라도 들여놓을지라면 팍! 어질어질 강펀치를 맞은 기분이 되곤 한다.


우리는 첫번째 아이를 떠나보내고 일 년 후 임테기에서 두줄을 볼 수 있었다. 지난 일년의 시간동안 안방 화장대에는 배란테스트기, 임신테스트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두번째 아이를 확인한 건 얼리 임신테스트기에서였다.


남편과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첫번째 아이가 떠나고 정말 신기하게 딱 1년만인 12월 말 얼리임테기에서 두줄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얼결이었지만 환호했다. 괜히 1년전 떠난 아가가 우리에게 선물을 준 거 같아 못 견딜 정도로 고마웠고 더 안쓰러웠고 더 사랑스러웠다. 그러한 감정에 취한 우리 둘은 막연한 기대, 긍정적인 확신에 푹 빠졌다. 일년 전 떠난 그 아이가 일년의 시간 동안 더 건강해져서 왔을거야. 이번엔 괜찮아.


임신 초기에는 산부인과에서 질초음파를 한다. 보통 4~5주 이상이 되었을 때 자궁에서 아기집 이상을 볼 수 있다. 얼리 임테기에서 두줄을 확인한 당시는 아이를 초음파로 볼 수 있는 그 주수에 못 미쳤기에 병원에 가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틀에 한차례씩, 집에 있는 임테기로 두줄의 여부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의 기분이 이런 거였나? 첫번째 임신 때는 느끼지 못한 기분이었다. 작은 임테기에서 발현된 붉은 두 줄이 날 이렇게 기쁘게 할 줄이야. 콧노래가 나왔고 어서 빨리 병원을 찾아 권위자로부터 '임신사실'을 통보 받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여유만만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딱 그렇게 열흘. 그날의 아침 임테기는 다시 한 줄이 되어있었다. 임테기의 한줄이 두줄로 되는 건 보았어도, 두줄이 한 줄이 되는건 생소했다. 불안이 엄습했다. 그리고 바로 남편 바리와 난 병원을 찾았다.

KakaoTalk_20210525_115956549.jpg 두 줄에서 한 줄이 되어간 임테기.


병원에선 피검사를 먼저 진행했다. 피검사 수치가 일반적으로 5이상이 되면 임신 확률이 있다고 보는데 나는 10정도 라고 했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출근을 한 내게 친절한 의사는 직접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의사는 "아이집이 그냥 허물어져버린 것 같아요. 임신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겠어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위로를 받고 있는 내 표정이 구겨지는 게 느껴졌다.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의사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마치 비운의 인어공주가 된 것 마냥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방금 전까지 바쁘게 투닥이던 컴퓨터 키보드를 멈추고 난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찾아가 문을 단단히 걸어잠궜다.

소리를 참고 울었다. 눈이 퉁퉁 부울 정도로 단시간에 흠뻑 울었다. 울어도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복잡한 미로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아이를 갖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왜 나에게만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걸까? 갖기 싫어 하는 사람들에겐 아이도 잘 생기던데 왜 원하는 우리에겐 오지 않는 걸까. 그 고약한 미로는 날 점점 미궁에 빠뜨리며 아주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출장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 전화.. 전화 왔는데... 임신이 아니래... 피수치가.. 흑... 피수치는 맞는데... 근데 아니래.. 끄억.. 흐어엉.."

말인지 울음인지 모를 짐승같은 소리를 토해내는 나를 두고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눈물을 삼키고 있지 않았을까.


별도의 수술조차 필요하지 않았던 정말 짧았던 두번째 임신은 '화학적 유산'이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열흘간의 행복과 기쁨은 더 큰 실망으로 돌아왔지만, 다행이라면 이걸까. 임신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 이번에는 지인들의 위로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말이다. 세포 수준의 결합에 불과했던 극초기의 상황이라 임신을 경험한 내 몸이 덜 상했다는 것도 어쩜 다행이었다.


그날밤 나와 바리는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 이 미로같은 세상에서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는 타인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그런 이상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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