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서번트 리더십'

전 프로 거짓말쟁이 입니다만, <13>

by 유스

"저희 딸이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부끄럽지만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애거든요. 부족한 게 많지만 사돈께서 예쁘게 봐주세요."


상견례 때 나의 엄마 영은 예비 사돈에게 몇 차례나 강조해서 말을 반복했다. 더 강조해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영의 생각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저희 딸이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앞에 생략된 단어는 '집안일'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이건 나 뿐 아니라 남편 바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굳이 둘의 집안일 경력에 무게를 달아본다면 내 편이 나았다. 내 자취 경력이 길었고 또 그는 '남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집안일을 덜 하는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결혼 전 '결혼 후 집안일 등에 대한 주도권을 먼저 잡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인터넷 결혼 선배'들을 통해 들은 적 있다. 그말인즉 주도권을 빼앗기면 독박 집안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결혼 초기만 해도 저 조언은 나를 지배했다. 얼굴도 모르는 인터넷 선배들이 한 말을 중요한 인생의 지침인마냥 한번씩 상기시키곤 한 것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일년, 이년 지나가면서 깨닫게 됐다. 저 조언처럼 떠도는 말은 결혼과 관련된 몹쓸 말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주도권이 무엇이 있을 것이고, 우위가 있고 열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의 그런 생각을 깨게 만든건 남편 바리의 역할이 컸다.

결혼 초 우리는 다른 영민한 신혼부부들처럼 주단위 집안일 스케쥴을 짜고 공평하게 나누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바리는 그럴 생각 조차 없었겠지만 난 오로지 게을러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 되는 사람, 더 잘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난 (힘이 덜 드는) 세탁 쪽에 흥미가 있었고 바리는 요리에 흥미가 있었다. 자연스레 남편이 퇴근 후 요리와 주말의 밥상을 책임지게 됐고 난 세탁기 돌리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그 외 둘다 하기 싫어하는 설거지와 청소는 함께 했다. 내가 청소기를 돌리면 남편은 걸레를 닦는 방식으로.


바리는 요리를 할 때 정말 내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했는데 실제로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는 나를 마냥 기특하게 바라보곤 했다.

매번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 더 열심히 맛있게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맛있게 많이 먹었고 결혼 후 7kg가 불어나는 기염을 토해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에게 정성을 담은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우물우물 음식을 한가득 입에 넣고 맛있다며 엄지척을 올리는 나를 바라보던 바리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결혼 후 내게 요리를 하라는 그 어떤 다그침도, 요리를 해달라는 그 어떤 요청도 한 번 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 나를 주방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내심 강한 현자들이 할 법한 현명하고 탁월한 방법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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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가 만들어준 음식들. 그 중에서 콩나물잡채가 제일 맛있다.

우리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면 늘 이런 식이었다. 바리의 희생정신과 솔선수범이 나를 감복시켜 게으르고 이기적인 나를 결국 행동하게 만드는 식.

예전 한창 이력서를 쓸 때 자기소개란에 이런 말을 쓰곤 했다. "리더로서 부하를 섬기고 솔선수범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해 신뢰를 쌓고 조직을 소통하게 해 회사의 성장을 돕겠습니다"라고. 바리의 행동이야 말로 내가 거짓부렁이로 써내려갔던 서번트 리더십에 어울리는 것 아닐까.


최근에는 바리가 바빠지고 반대로 나는 재택근무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많은 집안일은 내 차지가 됐다. 가끔 방의 불을 안 끈다든지, 화장실 수건을 교체하지 않는다든지 뒷정리가 안되는 그의 행동에 불만도 생기긴 하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평소 그가 쌓아온 집안일에 대한 공적(?)이 나의 욱함과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다. 이래서 사람이 평소 덕을 쌓고 살아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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