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리어카 여행을 떠나는 엄마가 되고싶어요

전 프로거짓말쟁이 입니다만,<14>

by 유스

근무 중 남편 바리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페스티벌 자원봉사자들 중에 대학생들이 여럿 있든. 근데 밝은 애들이 확실히 보기 좋다. 우리 아이도 밝았으면 좋겠어."

바리는 이 말을 급히 하곤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와의 짧은 통화 후 난 이런저런 생각을 들었다.

내 아이는 어떤 사람이 될까?


지인 중 한 부부가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던 박-이 부부는 모든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귀촌했다. 그 덕에 그들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마음껏 땅을 밟고 여름이면 집 앞 계곡에 들어가 물을 첨벙이며 산다. 이들의 자녀 교육관은 내게 결혼 전부터 큰 인상을 심어줬는데, 그중 가장 큰 인상을 받았던 것은 아빠 박이 아들을 데리고 떠난 '섬진강 리어카 여행'이었다.


섬진강 리어카 여행은 아빠 박이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초등학생 자녀 영준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이었다. 리어카에 식량과 텐트와 침낭을 싣고 도보 여행을 하면서 발길 닿는 곳에서 쉬어가는 것. 그것이 이들의 리어카 여행의 모토였다.


아빠와 초등생 자녀가 함께 떠난 손수레 여행.


이들의 첫 리어카 여행은 전북 임실에서 전남 구례에 이르는 약 120km의 일정이었다. 하루에 20km씩 5~6일 걷는 것을 계획한 여행. '박군들의 손수레 여행'이라는 작은 현수막이 걸린 리어카를 끌고 부자는 섬진강을 걷고 사람들을 만났다. 온종일 땀을 흘리며 다리 아프게 걸어야 했고, 편한 잠자리도 아니었을 테고, 시원하게 샤워 한번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부자가 섬진강을 걸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아빠 박은 오로지 하나의 생각에서 이 여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여행을 하고 싶다."


아들 영준이는 이 여행으로 꿈이 바뀌었다고 했다. TV와 컴퓨터가 없는 5일간의 여행에서 틈틈이 읽은 책들을 통해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작은 사건은 어떤 이에겐 큰 계기가 되곤 한다.




박-이 부부와 그의 자녀들을 떠올려보면 '내 아이는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질문은 이내 '나는 어떤 부모가 될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질문에 선행되는 것이 바로 나와 남편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타고난 성향에 반 할 순 없겠지만,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자식으로의 삶을 부모의 삶보다 길게 살아온 나 역시 이해하고 있다.


얼마 전 장항준 감독이 한 프로그램에 나와 자녀 교육관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 딸이 공부를 잘할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제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딸이 공부 못한다고 속상해하는 것이에요."


나는 어떤 부모가 될까?

아이가 꿈꿀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섬진강을 걸어보고 싶고, 리어카를 손수 끌어보게도 해주고 싶고, 해 뜨는 것이 궁금하다면 일출을 보러 당장 떠나는 부모가 되고 싶다.

호들갑 떠는 부모가 되지 않길 바란다.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의 인생을 존중하고 내 인생을 존중받는 삶을 살고 싶다.

아이가 조금 다쳐서 왔더라도 "그럴 수 있어. 더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아이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 아이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간다. 이 작은 우주가 스스로 어떤 궤적을 그려나갈지 궁금하다. 그리고 응원해주고 싶다.

아이가 생기고 내게 생긴 변화는 매우 크다. 단순히 배가 불러오고, 살이 찌고, 피부가 착색되고, 목주름이 깊어지는 외연의 변화보다도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인색했던 스스로에게 사랑을 주게 되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이것만큼 커다랗고 큰 변화가 있을까. 그래서 이 뱃속의 아기가 더 대단하고 웅장하게 다가온다.


물론 바람은 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커가기를 바라는, 부모로 기대하는 소소한 바람들 말이다.

그중 하나는 나의 취향을 조금은 닮았으면 좋겠다는 욕심 같은 것.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작가 등. 나와 함께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을 듣고 위로받는 경험을 하고, 성석제 아저씨 글을 보며 함께 깔깔거리며, 영화 그랜토리노를 보며 어떠한 어른이 될지에 대해 서로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도 난 아직 좋은 어른이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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