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영은 자식에게 끔찍이 헌신한다. 그 헌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스스로가 매번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이다. 그럴 때면 그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더욱 뻔뻔하게 다닐 뿐이다.
난 어릴 적 아버지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그이 상의 사랑을 엄마에게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랑을 통해 알게 된 사랑의 항해는 행복하고 기쁜 여정이었다. 한 시작점에서 출발한 사랑은 이윽고 또 다른 점을 향해간다는 것을 엄마 영과 남편 바리를 통해 알게 됐다. 엄마를 통해 받은 사랑이 남편에게로, 남편에게서 받은 사랑이 내 뱃속의 아이에게로 전해진다는 것을. 사랑. 이 좋은 것. 단어만으로 따스하고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이것. 전 세계에 코로나19 따위가 아니라이런 사랑의 기운이 함부로 전염되면 좋겠다. 온갖 곳에. 마구마구.
엄마 영은 어릴 적부터 내 발을 예뻐했다. 요즘도 내 맨발을 보면 "이 예쁜 발로 조작조작 거리면서 걸었지"라며 내 두 발을 그녀의 늙은 손안에 꼭 쥔다. 발 뒤꿈치에는 새 허연 각질이 구질구질하게 일어난 30대 후반의 별 볼 일 없는 발이지만 영은 손안에 쥔 모래가 빠져나갈 것을 걱정하는 것 마냥, 빠져나갈 리 없는 이 커다란 발을 그녀의 조글조글한 손으로 감싼다. 두 손으로 꼭. 영과 나 둘 모두 정 없는 아빠를 미워하지만 엄마는 내 발을 볼 때면 아빠를 닮은 것을 안심한다.
"네가 내 미운 발을 안 닮아서 다행이야. 넌 네 아빠 칼발을 꼭 닮았어"라고.
상대방의 발을 만지고 발을 아껴주는 것, 어쩌면 이것은 내가 엄마 영에게 배운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남편의 발을 통해서였다.
바리의 발 사이즈는 대략 300㎜. 엄밀히 따지면 275~80㎜이지만 발등이 높고 발바닥이 평평해 최소 290㎜이상의 신발을 신는다. 내가 살면서 본 가장 큰 발 중 하나일 것이다. 유독 두 번째 발가락이 길고, 발에 곡선이라곤 하나도 없는 마치 벽돌같이 투박하고 단단한 발. 난 결혼 후 그 네모난 발과 사랑에 푹 빠졌다. 어찌나 사랑에 푹 빠졌던지 하루라도 그의 발을 만지지 않으면 허전하고, 아침시간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에도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그의 발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이겠는가.
비록 그 발에 맞는 신발이 얼마 없어 제대로 된 커플 신발을 사는 것도 어렵지만, 비록 찢어질 듯 늘어난 양말의 아우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얕은 천조각이 가엷기도 했지만 신발 안, 양말 안 꼼지락대고 있을 그의 발을 상상하는 것은 내 일상의 흥미이자 큰 기쁨이 됐다.
바리는 의아해했다. 여태껏 "발모가지가 왜 그렇게 생겼냐"며 타박받던 발이 결혼 후 예쁨의 대상이 되다니. 얼떨떨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와 바리의 발.
임신 12주, 첫 입체 초음파를 찍고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체가 불분명한 초음파 속 아이는 얇은 팔과 긴 허리, 그리고 큰 발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 형상화된 아이의 실루엣이라 볼 수 없지만 발이 큰 아빠와 발이 큰 남편을 가진 엄마는 사진 속 아이의 발이 얼마나 클지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의 초음파를 본 후 인터넷으로 '12주 입체 초음파'를 검색해 다른 아이의 발을 살펴보았다. 희한하게 우리 아이의 발만큼 커다란 발을 가진 아이는 검색 결과에 나오질 않았다.
나의 첫 입체 초음파. 저 녀석 유독 발이 커 보이는 걸.
바리는 "애가 꼭... 장화를 신은 거 같네"라며 다소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이 어린 생명체는 마치 장화를 신은 것 마냥 발이 뭉특하고 컸다.
남편의 벽돌 같은 발을 몹시도 사랑하는 나로서는 내 뱃속의 아이에게 붙여질 '장화 신은 아이'라는 타이틀이 못 견디게 마음에 들었다.
아, 귀여워라!
하지만 난 이내 그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뚫고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들일 경우, 딸일 경우...
그리고 난 바리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딸인데 자기 발을 닮으면.. 여러모로 신발 고르기가 쉽진 않겠는걸. 아, 물론 여자라고 반드시 하이힐을 신거나 단화를 신을 필요는 없지. 평생 운동화만 신어도 되겠지만 그래도 혹시 코가 작고 귀여운 플랫슈즈나 메리제인 슈즈를 신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
난 사기 꺾인 바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엄마 영이 사랑하는 내 발을 바라봤다. 임신을 하고 서서히 부어가는 두발에는 세련된 하이힐도, 귀여운 단화도 아닌 푹신한 슬리퍼가 신겨져 있다. 그 순간 지금보다 더 작고 예뻤을 어린 시절의 내 발을 두 손에 꼭 쥐고 조물거렸을 영의 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