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유산이었지만, 어쨌든 첫 번째로 임신을 했을 때 나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몇 년간 복용해온 '신경안정제'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임신의 기쁨보다도 앞으로 9달가량 신경안정제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임신을 하면 엄마가 먹는 모든 것과 취하는 모든 행동들이 뱃속의 아이에게 영향이 가기 때문에 특히 약 종류는 대부분 끊고 원시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물론 산부인과 의사의 진단 하에 통용되는 몇 가지 약들도 있다. 정확한 내용은 다니는 산부인과 의사를 통해서 확인받는 것이 좋다. 그 외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 http://www.childcare.go.kr/ 등 사이트를 통해 참고하자.)
나는 기꺼이 원시인이 될 수 있었다. 그 좋아하는 술도, 커피도 끊을 수 있었고 밥을 먹지 말라하면 안 먹을 각오도 있었다. 하지만 신경안정제만은, 끊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어떤 약보다도 임신 중 신경정신과 약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높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임신 전 복용했던 신경안정제 벤조디아제핀(불면증, 불안장애 등에 처방되는 약)이 자궁외임신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니 뭐.
나는 당시 동네의 한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나를 불안장애라고 했다.
내가 신경안정제를 먹어 온 기간은 4~5년가량. 증상이 발현된 첫 2년은 스스로를 윽박지르고 안타까워하고 자책하며 '까짓것, 이게 뭐라고, 한 번만 더, 할 수 있어, 노력해보자'라는 말로 극복해보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고, 결국 나의 엄마 영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찾아 진단을 받고 약을 타 먹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한번 약을 먹고 나니 이 약은 끊을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럴까. 한번 맛보고 나니 끊을 수 없는 이 쾌락의 심정. 그렇다. 나 역시 쾌락이었다. 소심하고 늘 불안에 떨던 내가 약 한 알에 대범해지고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몇 안 되는 쾌락이었다.
첫 임신 소식을 알고 난 남편 바리와 함께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나는 특히 가깝지 않은 지인을 만날 때, 회의를 할 때 그 불안이 극대화된다. 바리는 본인이 있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진정이 되는 것을 알기에, 내 점심시간과 회의시간에 자신이 최대한 일을 빼고 오겠다고 했다. 이 얼마나 민폐인가. 아무리 부부라지만 민폐는 민폐.
그래서 나는 바리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일단 새로운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해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이 병원은 한 시장통에 우뚝 솟은 건물의 4층이었다. 대기실엔 한 마른 남성이 모자를 쓰고 바닥을 보며 앉아 있었고, 데스크엔 피곤에 찌든 한 여성이 기계적으로 어서 오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바리의 손을 잡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해답을 찾기를 바라며 씩씩하게.
대기 후 들어간 진료실엔 나이가 지긋한, 육십 중후반은 됨 직해 보이는 남자 의사가 앉아있었다.
난 나의 증상의 발현과 지금의 상태, 약을 복용한 지 얼마나 됐는지 등에 대해 간략하고 빠르게 설명했다. 그간 내가 불안장애로 받아온 고통과 이를 이겨내기 위한 서사는 과감히 줄였다. 어르신들의 "내 이야기 써 내려가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해"라는 말처럼 나의 불안장애 서사기 역시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판이었다.
근엄한 표정의 의사는 나약해 보이는 내게 말했다.
"임신을 했는데 약을 먹으면 안 되죠."
나는 말했다.
"정말 안될까요?"
의사는 또 말했다.
"임산부가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어땠는지에 대한 결과가 없어요. 하지만 좋진 않겠죠. 먹지 말아야 해요."
나도 또 말했다.
"약을 안 먹으면 제가 사회생활이 힘들어서요.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심리치료를 받는 건요?"
그러자 여전히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의사가 내게 말했다. 마치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엄마라면서 모성애도 없어요? 엄마가 됐으면 약도 끊을 줄 알아야죠."
방금 전까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나가겠다며 심각하고 절박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순간 목구멍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이 모두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었다.
"아... 네..."
임신을 하면 저절로 모성애가 생기는 걸까? 엄마가 됐으니까 댕강 식칼로 무를 잘라내듯 내 약에 대한 의존도도 잘라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난 의사와 더 이상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다. 복용 유무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외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서 간 자리에서 내 모성애는 비난받고 나의 의지는 나약한 것이 됐다.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진료실 밖으로 나와 약 10분간의 대화 비용인 초진비 3만 원을 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바리에게 말했다.
".. 존나 비싸네."
첫 번째 임신을 지나 세 번째 임신을 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동안 내 불안장애는 큰 차도가 없었다.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었고 불안하면 심장이 뛰고 괴로웠다. 약을 최대한 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먹어야 했다.
임신 초기 안정기에 가졌던 몇 주간의 재택근무를 끝내고 출근을 앞둔 난 또다시 걱정에 휩싸였다. 내가 또 떨면 어떡하지. 회의 진행을 망쳐버리면 어떡하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고 짜내도 계속 나오는 고름 같은 이 불안함.
그런 나를 보며 나의 엄마 영은 말했다.
"딸, 마음을 편하게 먹어봐. 이제 넌 혼자가 아니잖아. 넌 엄마니까 괜찮아."
영의 이 말은 '엄마, 모성애'라는 단어로 날 다그치던 의사의 말과는 다른, 묘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디를 가든 내 뱃속에 내 편을 담고 다니는, 마치 한 마리의 어미 캥거루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나온 불안하고 긴장되던 여러 순간들, 그때가 되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그 외로운 세상에, 나 말고 나를 응원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단한 울타리였다.
그러니까, 유치하게 표현하자면 3대 1의 싸움 현장에서 혼자 싸우던 내게 아군 한 명이 더해져 아직도 수적으로는 열세지만 그래도 심적으로는 잘하면 이겨볼 만하겠네라며 마음에 파이팅을 새기게 된 느낌이랄까.
엄마 영의 말을 들은 이후 난 출근을 하고 회의를 갈 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난 킹왕짱 대단하다. 엄마니까!"
이 글이, 내 삶이 동화 같은 해피엔딩의 결말을 가졌다면 임신 후 마법처럼 불안증세가 사라졌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하지만 나의 주문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약을 먹지 않았지만, 전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심장소리를 들을 일들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니 말이다. 오히려 임신과 출산을 주제로 대화를 하며 웃는 여유도 조금 생겼다랄까. 아줌마 파워, 임산부 파워, 만만세!
나는 종종 뱃속의 아이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서 한 임신, 그렇게 만들어진 이 아이에게 혼자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 이 모든 순간들에 대해.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두 번의 유산 끝에 힘겹게 널 임신하고, 너를 지키기 위해 계단 하나도 조심히 걸어야 했고, 너에게 영양분을 다 줘야 해서 온 몸이 아팠고, 너를 키우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썼다는 그런 말들보다
너를 갖고 나서 내 마음에 여유가 조금 늘어갔고, 네가 사랑받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 미워했던 나를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됐으며, 좋은 아빠가 꿈이라는 남편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는 말들을
잊지 않고 꼭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너에게 얼마나 고마운지를 말이다. 그래야 뱃속에서 꾸물거리며 태동하는 아이에게 지금도 쌓여가고 있는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