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프로 거짓말쟁이 입니다만, <9>
2010년 정도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은 “남편과 옆집에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결혼이 뭔지도 몰랐던 20대의 나는 김윤아의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한 공간 안에서 매 시간을 다른 사람과 보내야 한다는 것은 어쩜 고역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한술 더 뜨면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의 소설 속 결혼 모습도 나의 이상적인 결혼관 중 하나였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자 알코올 중독자인 쇼코는 게이인 남편 무츠키와 산다. 무츠키에겐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고 쇼코도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셋은 곧잘 어울려 집에서 밥도 먹고 술을 마신다. 육체적인 관계, 이성을 향한 사랑의 감정은 없는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점에서는 그 어떤 부부보다 훌륭해 보인다.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런 식의 결혼 생활이라면 서로가 질릴 일은 없겠는걸. 그럼 오래도록 유지되는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밖엔 비가 내린다. 며칠 내내 지겹도록 비가 온다. 하지만 오늘은 비가 내려도 좋다. 오랜만에 남편이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옆집에 사는 결혼생활, 게이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꿈꿨던 이야기를 해놓고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다중이인가.
남편 바리는 두 달이 넘게 평일 주말 상관없이 일하고 있다. 그가 기획하는 페스티벌의 날짜가 다가오면서 정신없이 바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아끼는 나이지만 바리를 일에 빼앗긴 이후로 나는 꽤나 심통 맞아졌다. 특히 주말 출근을 한다고 하면 표정은 불만으로 일그러지고 울퉁불퉁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회사 일은 혼자 다 하시네.”(이때 포인트는 빈정대는 말투이다.)
나의 못된 말에 바리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남편을 향한 집착은 임산부의 삶에 들어오면서 심해졌다. 특히 임신 초반은 가관이었다.
그날은 바리가 운동모임의 술자리가 잡힌 날이었다. 그는 일찍 먹고 일찍 들어오겠다는 말과 함께 모임 시작인 오후 5시 정도에 나갔다. 그가 집 중문을 닫는 순간 시계를 보아선 안 되는 것이었다. 시계를 본 이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시계를 수시로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시간을 재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나간 지 네 시간이 됐는데 바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외출을 하면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 건 우리 둘 사이 모종의 약속이었지만 다섯 시간째가 될 때 난 부글부글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바리는 10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숨이 차서 헥헥 대는 그의 앞에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안고 있는 비운의 임산부가 되어 있었다.
“너는 임신 안 하니까 친구들 만날 수 있어서 아~주 좋겠어. 나는 혹시라도 아이한테 안 좋을까 봐 무서워서 집 계단도 못 내려가는데 넌 계단을 마구 내려갈 수 있어 좋지? 나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놀 친구도 없으면서) 넌 아주 좋겠다. 밖으로 못 나가고 거실 창문으로만 밖을 보는 내 심정을 알아? 뱃속의 아이가 나 혼자만의 아이인가 봐? 남자들은 아주 편하겠어.”
다른 사람과의 말싸움에는 영 젬병인 나이지만 이날만큼은 아가리 파이터에 빙의가 되더니 한 음절의 더듬거림도 끊김도 없이 말이 터져 나왔다. 내 앞에 선 바리의 고개는 점점 수그러져갔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라 한참 울고, 말을 뱉었다. 눈물, 콧물로 호르몬의 기운을 어느 정도 쏟아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안해 바리. 가엾은 내 남편. 내가 또 그걸 못 참았구나.
내가 20대 때 '목표'로 삼았던 결혼관들. 지금 생각하니 남편을 엄청 많이 좋아하는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결혼 모델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남편이 있어야 더 맛있고, 심지어 독서를 할 때도 옆의 남편에게 내용을 읽어주면서 해야 더 재미있는 데다, 샤워를 할 때도 남편에게 같이 씻자고 조를 정도로(바리는 싫어한다. 내가 샤워기 주도권을 안 놓기 때문이다.) 조금도 떨어져 있기 싫어하는데 옆집이 웬 말인가.
자우림 김윤아는 후에 인터뷰에서 "이상적인 결혼은 남편과 옆집에 사는 것”이라는 발언에 부연 설명을 했다. 기사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결국 그 말의 본질은 “존중받고 싶다는 뜻이었다”는 그녀는 “지금 충분히 남편에게서 내 공간을 확보받고 있다”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런 남편을 그녀는 “절친이자 소울메이트”라고 칭하며 행복해했다고.
오늘 역시 남편은 야근을 할 테고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아까 낮, 바리는 내가 먹고 싶어 했던 냉면을 포장해와 허겁지겁 건네주고 다시 사라졌다. 그 허둥거림, 그 정신없는 바쁨이 짠하고 예쁘고 고맙다. 식탁 위에 놓인 냉면을 바라보며 난 오늘도 호르몬 탓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감격의 눈물을. 그러니 오늘 혼자 저녁밥 먹는 것쯤이야 내겐 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