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애낳기 x같은 나라

전 프로 거짓말쟁이 입니다만, <8>

by 유스


대한민국 출산율 수치

2021년 1분기 기준 0.88명

우리나라 출산율이 역대 최저 수치라며 한동안 언론이 앞다퉈 기사를 쏟아냈다.


오늘 출근 후 본 한 포털의 메인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결혼도 출산도 다 필요 없다"…20대 절반이 지운 이름 '가족' (서울신문)


기사에 따르면 비혼독신에 대한 20대의 동의율은 2015년 37%, 2020년 53%로 16% 증가했다. 무자녀 계획은 15년 29.1%에서 20년 52.5%로 대폭 상승했다.


기사의 댓글을 찾아봤다.

추천 3,024를 받은 베댓_ "요즘 나 하나도 책임지기 벅찬데 결혼은 진짜 미친짓이지"

추천 2,681개를 받은 베댓_ "갈수록 애낳기 족같은 나라"


우리는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요즘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를 나름 젊은 층 신혼부부의 일원으로 생각해보건데, 아이보단 내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 등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돈' 문제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거 같다. 둘만 살아도 넉넉하지 않은 사회에 돈 덩어리 아이를 낳는다는 건 생각보다 비장하고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과 결혼 초, 임신은 나와 상관없는 세상이었던 그때, 나의 친정엄마는 그런 나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아이를 낳으면 몸이 약한 네가 고생이다, 아이가 응애 하고 우는 그 순간부터 모든 건 돈덩이라는 말로 나를 열렬히 응원해왔던 터. 그러니 갑자기 임신을 했다는 딸의 말에 축하보다는 배신감, 그리고 무수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첫 임신을 했을 때 내 엄마 영에게 축하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다만 "어떻게 키우려고"라는 식의 말들과 걱정스러운 표정. 오히려 임신 후 이걸 영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할 지 걱정이 먼저 들기도 했었으니까. 그만큼 엄마의 단호함을 알고 있었고 그런만큼 내가 단단한 믿음을 줘 왔기 때문이었다.


세번째 임신에 성공하고 남편 바리와 나는 임신 1차 안정기인 12주를 넘겨 각자의 집에 서서히 알리기로 했다. 아이를 기다리던 시가에서는 환호 받을 것이 분명했고, 문제는 나의 엄마 영이었다.


12주 전, 입덧 중 마침 영의 집에 갈일이 있었다. 얼굴만 보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엄마는 나와 남편이 온다는 이야기에 냉동고에 꽁꽁 얼려있던 굴비를 꺼내놨고 쌀을 씻어 놓았다.

오랜만인 딸 내외의 방문에 들떠서 저녁 메뉴를 준비했을 엄마의 마음이 녹고있는 굴비처럼 허물어져 가게 할 순 없었다. 이 세상 모든 맛을 잃어버린 입덧 초기, 난 으슬으슬 추위를 느끼며 억지로 밥을 삼켰다.

후에 들었지만 이때 영은 나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서 느꼈다고 했다. '내 딸이 임신을 했구나'라고. 살다보면 엄마의 전지전능함에 놀랄 때가 있다. 내 자식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고, 내 자식을 위해서는 못하는 게 없는 신 같은 존재. 그날의 나의 큰 신은 내 뱃속 작은 신의 태동을 느낀 것이다.


엄마 영은 이후 내 임신 소식을 전해듣고 역시 축하의 말 보다는 "이번엔 큰 문제(유산)가 없어야 될텐데"라며 걱정을 뱉었다. 생각해보니 막연한 축하보다는 구체적인 걱정이, 엄마 영이 내게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나의 입덧이 시작되고 영은 한끼라도 챙겨주기 위해 반찬을 들고 시내버스를 두번 환승해 딸의 집까지 오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난 딸의 집에 와서도 여전히 분주하게 요리를 하는 영에게 "엄마, 버스 두번이나 타고 힘들지 않아?"라며 인사치레 말을 건냈다.

영은 체념한 듯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이제는 딸의 임신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너 둘째도 낳을거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 둘째는 절-대 안 낳을거야."

내 말을 들은 영은 아차 싶은 표정이다.

"아. 네 말은 믿으면 안되지."


친오빠에게는 운전 중 통화를 하면서 임신 사실을 알렸다. 대한민국의 평균 남매처럼 무뚝뚝한 우리이다 보니 축하의 메시지 같은 건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빠가 축하를 해줬다면 쑥스러울 참이었다.

"오빠, 나 임신했어"라는 말에 오빠가 의뭉스러운 목소리로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오빠는 "너 임신하면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는데 어떡하려고? 너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이라고 말했다.


머릿속을 늘 헤집고 다니는 질문을 내 머리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로 들으니 홍두깨로 뒷머리를 턱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질문에는 우리의 경제적 기반에 대한 의문과 질타가 섞여 있음을 알고 있다. 질문을 받는 나는 진땀이 났다. 우왕좌왕, 횡설수설. '너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이라는 오빠의 말은 추임새에 불과했다. 진심이 아니었다.

나는 남의 일인것 마냥 감정없이 이야기했다.

"뭐... 육아휴직 쓰고 애기는 어린이집이라도 보내고 다시 일 해야지. 요새는 다들 그렇게 하더라."


오빠가 던진 질문은 임신 전에도 후에도 나와 바리의 해답없는 대화 주제였다. 괜찮은 일자리가 나와 이직을 꿈꾸다가도 임신 준비 기간에 이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현재 다니는 일자리도 출산 후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장'을 다니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된 거 같았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세상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 어떤 판타지, 미래공상 장르보다 더 막연하고 두려운 세계였다. 하지만 우리 둘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부터 하자"라는 주문 하나만으로 그 생경한 공포를 이겨내고 있었다. 어쩜 이겨내는 척이었다. 우리의 통장잔고는 쑥쑥 늘지 않았고, 당장 2년 후 들어갈 아파트 계약금 마련을 위한 대출과 현재 살고 있는 전세집의 대출 이자를 갚고 있는 중이었다.


실은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나는 계속해서 불안하고 가끔 울고 싶었다. 돈 걱정없이 아이를 낳는 지인들을 보면 마음이 힘들었고, 입덧 중에도 하루 하루 한끼라도 더 싼 걸 찾는 나의 초라한 취향과 가난한 마음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바리는 통장 잔고를 보며 울적해하는 나를 보며 늘 말한다.

"내가 덜 쓸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치킨이지만) 치킨 안 먹을 게."

"미안해. 내가 더 못 벌어서 널 고생시키네."

미안한 게 없는 바리가 내게 사과를 할 때면 늘 나는 그에게 무릎을 꿇고 두손을 싹싹 빌고 싶을 정도로 미안해진다.


치킨 한 마리 덜 먹고 그 돈으로 아이 기저귀를 사면 행복할까? 아닐 것 같다. 오히려 못 먹는다 생각하니 더 먹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인 걸.

남편과 나는 이제부터는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의 주문에서 벗어나 '지금 할 수 있는 일' 부터 다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어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임밍아웃에 나서자. 다 쓴 육아용품 어디에 버리지말고 우리에게 주십쇼. 감사히 받게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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