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후회했고, 가장 감격했던

전 프로 거짓말쟁이입니다만, <7>

by 유스

"아이가 보여야 되는데 보이질 않네요. 다음주에는 꼭 보여야 해요."

세번째 임신을 알게 된 첫 초음파에는 아기집만 보이고 아기가 보이질 않았다. 의사는 다음주 초음파가 이번 임신의 관건이라며, 몸조심하고 다음주에 보자고 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유산방지 질정과 먹는 약을 받으러 간 약국의 약사는 처방전을 보며 내게 말했다.

"힘내세요.. 다 잘 될 거에요!"

미안하게도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임신 사실을 알고 집으로 향하는 길,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기집만 보인다는 의사의 말도 불안했지만, 임신 사실을 몰랐을 때 먹었던 약들과 행동들이 날 미치게 했다. 그 시간들을 되짚어 보며 나는 붙잡아야할 운전대를 놓고 대신 두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었다.

'내가 미쳤지. 왜 약을 먹은거지? 다른 병원을 왜 다닌거지?'

나의 부주의함과 불찰이 너무 후회됐다. 일찍이 초음파를 권하지 않은 의사도 마냥 미웠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현재를 임신 5주로 계산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3주 5일_신경정신과 약

4주 4일_디스크 협착증으로 인한 허리 엑스레이

4주 5일_치과 엑스레이

5주 초_종합감기약


재택근무 시간을 알차게 보내겠다며 점심시간마다 병원 이곳저곳을 다닌 것이 화가 되어 돌아왔다. 특히 회의 참석을 위해 고민하다 먹었던 신경정신과 약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첫번째 임신 때도 신경정신과 약 복용과 관련해 의사와 상담을 했었지만 "임신과의 상관성이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며 "하지만 신경정신과 약은 대체적으로 등급이 낮은 편이라 먹지 않는 것을 권한다"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약에 포함된 항우울제는 복용하지 않고 혈압 관련 약만 4분의 3 정도 잘라 먹었다는 것이랄까.


며칠을 인터넷을 통해 '임산부 약', '임산부 신경정신과약', '임신 후 약 복용' 등을 검색했다. 나와 비슷한 임산부들이 많았고 그들은 나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불안은 전염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난 며칠을 불꺼진 거실에서 '차라리 임신이 아니었으면'하는 생각을 하며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렸다. 온라인에서 임산부약물정보센터를 발견하고 약의 정보와 등급에 대해 상세히 적어 상담을 요청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번째 초음파 날짜가 됐다. 이번엔 남편 바리의 손을 꼭 잡고 병원을 찾았다. 진료 대기 중 우리는 서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금단의 흰 방은 오늘도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들이여, 화이팅...!


초음파를 위해 치마로 갈아입고 차가운 의자 위에 앉았다. 의사가 익숙하게 질 속으로 초음파 기계를 쑥 넣었다. 그리곤 알 수 없는 초음파를 내게 보여주며 간호사에게 "소리를 더 키우라"고 했다.

그때였다. 쿵쿵쿵쿵....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이의 심장이.


난 두 다리를 벌리고 초음파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반쯤 상체를 일으킨 요상한 자세에서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뒤따라 들어온 바리도 심장소리와 나의 흐느낌을 사이에 두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는 기특하다는 듯 벌린 내 다리를 툭툭 치며 웃었다.

"심장 소리 처음 들어요?"


지난 일주일간 밤낮을 따지지 않고 떠올렸던 불안과 불행의 생각들이 아이의 이 힘찬 심장 박동에 모조리 사그라들었다. 살아있는 아이에게 감사했고, 우린 감격했다.

예전에 MBC 음악프로 '나는가수다'를 볼 때마다 객석의 관객들이 가수의 노래에 감동해 우는 모습을 보며 의아하곤 했다. 얼마나 감동하면 눈물이 나올까?

나의 이 순간을, 타인의 그 '순간'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37년을 살면서 경험한 가장 감격적인 순간. 내 아이의 심장 소리. 다시말해 그것은 내가 살아있는 증거였다. 나는 여전히 초음파실에 울리고 있는 당차고 단단한 심장소리를 들으며 이 순간이 참으로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임신을 하기로 마음 먹고 프로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했던 그 순간처럼,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아가야, 고마워. 고맙고 또 고마워. 살아줘서 진짜 고맙다.

이번엔 네 심장이 멈추지 않게 내가, 이 엄마가 노력해볼게. 우리 같이 살아보자. 고맙다.


병원을 뒤로 한 바리와 나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두 손에는 강렬하고 비장한 전우애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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