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센터에 오기 전 나는 무지했다. 난임센터를 다니는 지인에게 '불임클리닉'이라는 표현을 쓰곤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했기에 더 무지했던 것 같다.
처음 난임센터를 찾은 날, 병원 입구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는 방역요원은 내게 "방문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민 끝에 쭈뼛거리며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라고 말했다. 머릿속으로 "난임센터 가는데요"라고 해야하나라는 고민이 가득했지만 선뜻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위축이 되는 기분이었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나는 애써 찜찜한 기분을 떨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센터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일반 산부인과보다 덜 밀렸고 예약을 하면 오래 대기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의사는 우리의 그간 상황을 듣고 부부관계 날짜를 받아서 자연임신을 노리는 방법이 있고, 검사 후 바로 시험관으로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난임센터로 오기 전, 임신 확률이 높은 날짜를 산부인과에서 받아 숙제하듯 부부관계를 해오고 있었다.
바리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바리도 내게 말 하지 않았지만) 아이이든 어른이든 숙제란 것은 실로 귀찮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잠자리를 하는 것도 숙제라는 이름이 붙어버리니 마찬가지였다. 잠들기 전 서로를 촉촉하게 바라보다 삘(..!) 받아 불을 끄고 탐하는 것과 숙제 마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의무적으로 탐해야 하는 것은 짜파게티와 수타짜장의 면발 차이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착실한 바리가 숙제 날짜가 지나기 전 나를 유혹(?)할때 나도 모르게 "아... 오늘 숙제 날이야?" 라고 말해버리는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성실한 바리는 "숙제라고 말하지 말자. 괜히 의무감에 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야"라고 대답했다.
난임센터 첫 진료에서 우리는 시험관 수술을 위한 1차 검사를 받았다. 둘의 유전자 검사 및 임신을 하는데 문제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검사였다.
내 난소 나이는 스물둘이었다. 실제 나이가 서른 후반이니, 난소 나이가 실제에 비해 엄청난 동안(?)인 것이다. 이게 왠 횡재냐? 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에서는 좋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불규칙적인 생리 주기 탓에 난소 나이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왔을 뿐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한 차례 생리를 하고 나팔관 조영술 일정을 잡기로 했다. 나팔관 조영술은 생리 시작 후 6~11일째 받는 시술로 액체로 된 조영제를 자궁입구로 주입해 나팔관을 원활하게 통과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는 나팔관 조영술을, 그리고 남편은 정액검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나대로 아플 것을, 바리는 바리대로 낯설고 당황스러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필 난임센터 첫날, 남편 바리는 비밀의 공간을 보고야 말았다고 했다. 그는 흰색의 문을 가리키며 “나 아까 저기서 여자가 남자 고추 빨고 있는 장면을 봐버렸어”라고 내게 숨죽이며 말했다. 바리와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가 들어갔던 방이었다. 바로, 그곳이, 공인된 금단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다음 검사 때 바리는 정액검사를 위해 저 방으로 들어갈테지. 그는 “나 영상 안 보고 네 생각하면서 해볼게”라고 말했다. 비장한 그의 표정이 웃겨 그만 깔깔거리고 웃어버렸다. 근엄한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영상은 필요없어요"라고 말하는 바리를 떠올렸다. 윽 너무 이상한 걸. 차라리 여자가 남자 고추 빠는 영상을 보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아냐, 그냥 영상 보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리에게 신신당부했다.
난 학창시절부터 생리가 불규칙했다. 밥을 잘 안먹을 때는 길게는 석달에 한번씩 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참 좋았다. 생리통으로 아프지 않아도 됐고 생리가 샐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다낭성 난포증후군(무배란성 월경 이상과 난소에 여러 개의 물혹이 생기는 증상) 이라는 단어는 상상도 못할 때였다.
결혼 후에는 피임약을 먹으면서 생리 주기가 꽤나 일정해졌다. 하지만 첫 번째 유산으로 소파수술을 한 후 생리가 그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주기가 뒤죽박죽이었다. 나팔관 조영술의 일정을 잡아야하는데 생리가 오지 않았다. 바리와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한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임신을 하고 싶은 우리에게 닥친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결국 주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첫째 달 생리가 오지 않아 생리 유도주사를 맞았고, 두번째 달도 역시 생리가 오지 않아 두번째 생리 유도주사를 맞았다. 세번째달 이제나 올까 했던 생리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이제는 피임약으로 생리를 조절해보자는 의사의 말에 약을 타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약 처방 전 의사는 초음파를 권했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말했다. 그도 꽤나 당혹스러운 목소리였다.
"아..... 임신이네요."
두 다리를 벌린 채 병원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애꿎은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임신이라고? 내가?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나왔다. "엄마야!"
숙취인 줄 알고 변기를 붙잡고 있었던 나의 첫 임신, 임테기 두줄이 한줄이 되어갔던 나의 두번째 임신.
비혼주의자에 절대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이 거짓말쟁이는 어쩌다보니 세번째 임신을 하고야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