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 너를 불태운다

by 유스



역사면 역사지 흑역사는 뭐니. 백역사라는 단어는 없잖아. 그치?


그럼에도, 흑역사라 하니 기억을 더듬어보지 않을 수 없다.


# 떠오르는 흑역사

우선 떠오르는 기억은 몇달 전 봤던 G사의 면접.

사람 3명 이상 앞에 서면 떨리는 목소리의 나인데 면접관이 다섯이요, 동시 면접자가 세명이니 이것은 안봐도 흑역사 당첨.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니 돌아오는 답변.
"경력인데 그렇게 떨려요?"

네, 라는 답변까지 떨렸으면 말 다했지.

"본인의 단점이라 생각하는 점이 뭐죠?"(면접 마지막 질문이 이런거라니)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 떠는거요."(이쯤 되니 될대로 되라싶어서 목소리도 안 떨림)


또하나 떠오르는 얼마전 흑역사.

며칠 전 남성인 직장 동료와 대화 중 혼자 웃음이 터져 코로 웃어버린 일이 있었더랬지.

"하하하핳커꺼꺽"

티를 안 내려 자제했지만 흠칫 놀란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는.

아, 물론 난 '니가 잘못 들은거야' 라는 무언의 태도로 일관했지만.

그 사람 본인이 잘못 들은 걸로 알겠지? 그럴거야. 내 연기는 뛰어났거든.


#활활 타라 흑역사여

한 축제장에 갔는데 재미있는 놀이가 있었다.

자석을 이용해 미니 낚시대로 잡아올린 글자를 부싯돌로 불꽃을 일으켜 태우는 놀이다.


태어나서 낚시대라곤 잡아본적 없는 내가 강태공마냥 호기롭게 잡아올린 대어는 '흑역사'.


오호라. 너 잘만났다. 까짓것 모조리 태워주겠어.


부싯돌로 일으킨 불꽃에 흑역사를 불쏘시개로 넣으니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정말 내 '흑'역사를 태워주기라도 한듯 기분이 묘해진다.


흑역사.

실은 순간순간 느꼈던 창피하고 부끄러운 순간은 훨씬 많다. 그럼에도 당장 떠올리자니 떠오르지 않는 것은 이 얼마나 다행인가.

머리속은 한정되어 있는데 굴욕적인 내 자신의 순간을 일일이 저장하는 것은 건강상 좋지않다. 또 가능하지도 않다.


한두해씩 나이가 들면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다름아닌 뻔뻔함이다. 혹은 건망증.

과거의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움에 발버둥치던 어렸던 내가, 이제는 과거의 순간을 되풀이하지말자며 과거를 교훈삼아 미래를 준비하는 나로 변해간다는 것. 혹은 진짜 건망증 때문에 잊어버린다는 것.(이런 건망증은 대환영이다. 올레)


얼마 전 흑역사를 활활 불태워버린 '흑역사 화형식'의 선배로써 전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지닌 기억하고싶지 않은 과거를 지금 이 순간 확 태워버리길.

혜민스님의 말씀처럼, 주변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이것은 사실이기보단 어쩌면 진실에 가깝다.


오늘의 한컷: 안그래도 복잡한 머리속. 너까지 있을 공간 따윈 없다. 활활 타라 내 흑역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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