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에 뜨는 별 Daystar Jan 21. 2021

사주를 믿으세요?

어떻게 안 믿어요?

21세기 최첨단 시대. 과학이 아니면 믿지 않는 내가 사주를 믿는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일견 사주도 과학이라는 말도 있긴 한데 썩 믿음이 가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일은 사실이지 않은가. 과거를 부정하지 않기 위한 나의 유일한 방법은 사주를 과학으로 인정하는 방법뿐이다. 나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니.. 슬프기도 하다.






2008년 3월 어느 날.

“야! 할 일 없으면 점이나 보러 가자. 압구정에 요즘 핫한 점집이 있대~”

군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나와있던 어느 날, 작은누나가 점을 보러 가자고 했다. 모태신앙이라는 사람이 무슨 점이냐며 한 소리를 하긴 했지만, 점이라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나 역시 전역 후 삶이 궁금했기에 기꺼이 따라나섰다.

그날은 일요일 아침으로 기억하는데, 거리는 한산했고, 날씨는 쌀쌀했다. 오랜만에 온 압구정 골목골목을 돌아 한 아파트 상가에 도달했다. 압구정 한복판이었는데, 이런 곳에 있으리라곤 상상하기 힘든 장소에 점집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고 보니 점집이 아니라 사주 보는 집이었다.

‘그럼 그렇지... 누나는 뭘 알고 오자고 한 거야?’






“‘생년월일시’가 어떻게 되세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분홍색 폴로 남방에 청바지를 입은 삼십 대 여자가 다짜고짜 생년월일을 물어보는데, 누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날 것 같은 모습이 한문을 읽기는 하는 건지 여간 믿음이 안 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기나 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누나 옆에 앉아있었는데, 누나 표정을 보니 뭔가 기대 섞인 호기심으로 눈에 생기가 가득했다. 누나는 당시에 이직과 연애에 관련된 일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을 터인데, 아마도 이곳에서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나 차례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사실 나는 사주를 볼 생각이 크게 없었는데, 사주 봐주시는 분이 바쁜 일이 없었는지 내 사주도 봐주겠다고 하기에 기꺼이 응대를 했다. 생년월일시를 전달하고, 3분 정도 기다렸나.. 이분이 종이에 몇 가지를 적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궁금하시죠?”

‘와씨... 맞아 나 그거 궁금해서 온 건데. 어떻게 알았지?’

“손님 나이 때 남자들은 다 똑같은 질문 해요. 손님 사주에는 여기 종이에 적힌 3가지 직종이 나오네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 교사나 교수 같은 거요. 그리고 정치인. 마지막으로는... 뭔가 큰 기계를 만지는 사람이네요.”

‘가르치는 사람? 신기하네.. 나 사범대 졸업한 거 내가 말했나?.. 흠.. 생뚱맞게 정치인은 뭐야.. 그리고 큰 기계를 만진다고? 뭔 소리야 내가 자동차 말고 기계 만질 일이 뭐 있다고. 하하.’







그렇게 사주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사주가 적힌 종이는 책꽂이 한편에 꽂아놓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리고 길지 않은 몇 년 후, 우연한 기회에 미국으로 항공 유학을 떠났다.

우여곡절 많았던 항공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비행을 더 하다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항공사에 입사했다. 맨날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만 타다가 제트엔진 달린 큰 비행기를 탄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이 꿈만 같았다. 훈련을 잘 마친 끝에 드디어 수습 꼬리를 뗀 부기장이 되었고, 나는 일복이 터진 사주인지 비행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비행 전 외부 점검을 하다가 비행기 엔진을 만지는데 불현듯 6년 전 압구정 사주 집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는... 뭔가 큰 기계를 만지는 사람이네요.’

오우 쉣! 오 마이 갓!!! 망치로 머리를 맞으면 이 느낌일까. 6년 전 사주 집에서 있었던 일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이게 다 운명이었단 말이야?! 허허......’

처음엔 멍하니 두려운 기분이었다가 이내 안도가 되었다. 왠지 나의 길을 잘 찾아온 듯한 기분이고, 무탈하게 일을 잘할 것 같아 힘이 났다.






2021년. 처음 조종석에 앉아 하늘로 날아오른 지 13년째. 날아온 시간보다 날아오를 시간이 더 많이 남은 지금. 문득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면 압구정 그 날을 기억한다. 태어날 때부터 나의 등에는 날개가 있었음에 안도하고 오늘도 힘차게 날아오른다. 사주는 변하지 않으니 날개가 꺾일 일은 없지 않겠는가.



아들아. 보고싶구나.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낼 줄은 몰랐단다. 사주에 없었거든...
이전 07화 예측하지 못 한 위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