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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에 뜨는 별 Daystar Dec 15. 2020

예측하지 못 한 위험

시간과의 싸움

연말이 다가온다. 어김없이 지구는 태양을  바퀴 돌아   같이  자리를 찾아간다.  넓은 우주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은 오롯이 우리 지구인들만의 이야기인 듯하고, ‘코로나 시작한 2020년은 여전히 ‘코로나 끝이 난다. 2021년은 부디... ‘희망으로 시작해서 ‘도약으로 끝이 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12월 31일

오늘은 ‘보아오-충칭’을 왕복하는 2 레그 비행이다. 12월 31일 저녁에 ‘보아오’를 이륙해서 자정을 갓 넘긴 1월 1일에 다시 ‘보아오’에 착륙하는 스케줄이니, 1박 2일 비행이기도 하고, 2년에 걸친 비행이기도 하다. 올 해도 가족들과는 랜선으로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연말에 특히 바쁜 항공 직장인의 숙명이랄까… 내년에는 부디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보신각 타종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기를...

비행 전 브리핑 시간에 맞춰 호텔 로비에 ‘Crew(크루 : 운항승무원, 객실승무원, 보안요원을 통칭)’들이 모였다. 서로의 쓸쓸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각자의 눈빛엔 따스함이 가득하다.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이 어지러운 순간에도 내 유니폼 바지의 빳빳한 칼주름은 초연히 빛을 발한다. 한 겨울에도 눅눅한 공기가 지배하는 ‘하이난섬’에서는 웬만하면 다들 다림질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비싼 다리미를 써도 각 잡힌 주름은 시들시들 금방 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오늘도 정성을 다 해 다림질을 했다. 한 해 동안 고생한 나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고, 올해 마지막 비행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안전한 비행을 바라는 마음. 그뿐이고, 그 게 전부다.






보아오 공항을 이륙하여 바라보는 하이난섬의 전경이 오늘은 유독 아름답다. 휴향 차 하이난섬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와 불꽃놀이를 즐기는데, 섬의 구석구석마다 터지는 형형색색 불꽃들의 향연이 마치 나를 반짝이는 수 천 개의 별들 사이로 헤엄치게 만드는 듯하다. 산개한 비구름이 불쑥불쑥 솟아 문득 겁을 주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것 또한 불꽃에 산란되어 오묘히 아름답다.

달빛마저 잠든 캄캄한 어두운 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없이 많은 별들을 헤아리며 추억여행에 빠져드는 그 순간, 그 매력에 빠져본 적이 없다면 감히 항공기 조종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인데, 오늘 이 순간만큼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아름답다. 위아래로 별들이 휘몰아치니 그 황홀함에 더할 나위 있겠는가.


비행 중 종종 사색에 빠지곤 한다. 사진 출처<CNN Travel>







충칭 공항을 이륙하여 다시 보아오 공항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하이커우 어프로치(Haikou Approach : 하이커우 접근관제소)’에 컨택하니, 주파수가 매우 혼잡하다. 관제사와 조종사들이 시끄럽게 엉키며 교신 중인데, 그 와중에 한국 항공사의 ‘콜사인(Call Sign : 비행 중에 부르는 항공기 명칭)’도 들린다.

“Haikou approach, XXAir123. Climbing 900m. Following missed approach procedure(하이커우 어프로치, 여기는 XX항공 123편. 900m로 상승한다. 접근 포기 절차를 따르고 있다).”

‘어라? 이거 Go around(복행, 착륙 단념)한 건데? 무슨 일이지?’

뒤이어 다른 항공기들도 착륙을 단념하고 다시 상승한다. 항공기들이 연달아 복행을 한다는 것은 공항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보아오 공항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하이커우 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우리에게 남 일이 아니다.

“Listen to the ATIS(Automatic Terminal Information System : 자동 공항 정보 시스템) again.(기상 다시 들어보자.)”

부기장에게 재차 보아오 공항의 기상 확인을 지시한다.

기상을 다시 받아 보았는데 15분 전에 확인한 내용과 달라진 게 없다. 착륙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날씨는 괜찮은데…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땅에서 뭔가 ‘번쩍’하는데 구름에 가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여기서도 ‘번쩍’, 저기서도 ‘번쩍’. 마치 TV에서 본 걸프전 미사일처럼 사방에서 불빛이 난무한다.

‘전쟁이 났을 리는 없고… 음… 뭐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부기장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구름을 뚫고 불빛 하나가 하늘로 솟구친다.

‘잠깐만... 설마?! 저게 다 지금… 폭죽 연기란 말이야???!!!’







그랬다. 15억 인구가 동시에 터트리는 폭죽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해가 질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폭죽을 터트렸으니 그 연기가 다 어디로 갔겠는가. 더욱이 오늘따라 유난히 고요했던 날씨는 ‘기온 역전층’을 형성했고, 지상에서 피어오른 연기를 본연의 상태 그대로 차곡차곡 바닥에 쌓아두었다. 그리고 해가 진 후 바다보다 빠르게 차가워진 육지는 공기를 바다 쪽으로 밀어냈다. 내륙에서 발생한 연기가 공기의 흐름을 타고 공항이 있는 바다 쪽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 자욱한 연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공포가 엄습한다. 만약, 보아오 공항에 착륙을 실패하고 하이커우 공항에도 내릴 수 없다면…

‘연료가 부족하다.’







“Boao Tower. Voyser123. Descending 6000m. Request weather information(보아오 타워. 여기는 보이저 123. 6000미터로 강하중이다. 공항 기상 전송 바란다.).”

“Visibility 700m. Going down. Wind calm. QNH 1029(현재 시정 700m. 점점 떨어지고 있다. 바람은 잔잔하고, 기압은 1029hpa.).”

700m 시정이면 일단 착륙 시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계속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고, 언제 제한치 미만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시정이 550m 미만으로 떨어지면 착륙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밀려드는 연기보다 빨리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젠장... 뭐 이런 상황이 다 있어.. 새 해 첫날부터 오지게 당하는구먼...’







보아오 공항 활주로의 DA(Decision Altitude : 결심 고도)는 260ft(약 78m)다. 강하를 하다가 260ft에 도달해도 활주로 불빛이 보이지 않으면 착륙을 단념하고 재상승해야 한다. 글로 쓰니 간단하지만,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이 간단한 규정을 어겨서 일어난 ‘참사’가 없지 않다.

부기장과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접근을 시도한다.



“Landing Check-list(착륙 체크리스트).”

“Engine Start Switches. Continuous. Speed Brake. Armed. Green lights. Landing Gear. Down. Green lights. Flaps. 30. Green lights. Landing Check-list completed(엔진 점화 스위치, 스피드 브레이크, 랜딩 기어, 플랩. 확인 완료. 착륙 체크리스트 확인 완료).”

Auto Landing(자동 착륙)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시정이 나쁜 날에는 오토 랜딩이 안전하다. 이제 활주로 불빛만 보이면 된다. 아니, 보여야 한다.

“1000ft”

“Check.”

“500ft”

“Check.”


아직 활주로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드르륵. 드르륵”

Trim(트림)이 감긴다. 항공기가 착륙과 재상승을 스스로 준비하는 거다. 결심은 조종사가 한다.

“100ft to Decision(결심 100ft 전).”

“Continue(접근 계속).”

‘아이씨... 보여라 제발.. 보여라.....’

“Decision(결심하세요).”

접근을 포기하려 TO/GA(Take Off / Go Around : 항공기 최대 출력) 스위치를 누르려는 순간, 전방에 희미한 불빛이 일렁인다.

‘보인다!’

“Approach Lights insight! Landing!(접근 등화 확인! 착륙!)”


공항, 항공기, 조종사 모두 자격을 갖춘 상황이라면, 시정이 나쁜 상황에도 착륙이 가능하다. 사진 출처 <유튜브 737Aviation>







무사히 착륙했다. Follow me Car(안내 차량)를 따라 Stand(주기 장소)로 천천히 이동한다. 파킹 브레이크를 걸고, 엔진을 끈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마시는데 매퀘한 공기가 허파를 찌른다. 이게 뭐가 좋다고 그리들 터트려대는지... 알 수가 없다.



2020년 1월 1일 새벽 1시 30분. 나의 새 해 운은 이렇게... 동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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