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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에 뜨는 별 Daystar Aug 11. 2020

일상(공항 가는 길)

새벽 비행

알람이 울린다. 나처럼 알람에 민감한 사람이 또 있을까. 벌떡 일어난다. ‘아 피곤해…’ 지금은 새벽 3시. 3시간밖에 못 잤다. 전날 밤 9시부터 누워있었는데 자정이 넘어서 잠이 들었다. ‘그래도 자긴 잤잖아. 그게 어디야…’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렇게라도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말이 되냐고? 훗.. 효과가 있다.

거실에 나가 물을 마신다. 지금 마셔야 비행 전에 장을 비울 수 있다. ‘변’이 그날 비행의 성패를 좌우한다. 만약 이착륙 중에 신호가 온다면… 윽!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칫솔을 물고 샤워를 한다. 시간을 아껴야 한다. 아침은 먹지 않는다. 오랜 습관이다. 그래야 정신이 맑다. 몸을 말리고 유니폼을 입는다. 셔츠의 날카로운 칼주름이 만족스럽다. 구두를 신는다. 광은 나지 않아도 깨끗하다. 적당한 사용감이 발을 감싼다. 구두는 편한 게 최고다. 비행가방을 확인한다. 아이디, 자격증, 여권, 로그북, 헤드셋, 선글라스… 다 있다. 이제 됐다. 출근 준비 끝.






택시를 탄다. 어제 예약한 콜택시다. 기사님의 얼굴이 낯익다. 운전이 부드럽다. 기사님이 날 배려하시는 거다. 마음이 놓인다.. 회사까지는 20분. 기상청 어플을 켜고 날씨를 확인한다. 인천공항 날씨.. 남풍이 잔잔하고, 시정 좋고, 온도는 섭씨 20도, 구름 없음. 홍콩 날씨.. 바람이 좀 불지만 그 외 나쁘지 않다. 항로 기상도.. 역시 괜찮다. 날씨를 확인하고 창 밖을 보니 익숙한 사거리가 보인다. 종종걸음으로 크루들이 지나간다. 회사에 도착했다.






쇼업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출근했다. 먼저 출근한 부기장이 운항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신입 부기장이다. 뭔가 분주하다. 천천히 와도 되는데.. 나보다도 일찍 일어났겠군…’ 인사는 뒤로 미루고 개인 메일함을 확인한다. 청첩장이 꽂혀있다. 결혼합니다. 축하해주세요~ 9 30. 발산 사거리.. 에메랄드홀…’ 부기장 누군가가 결혼을 하나보다. 갈까? 생각  해보고 승무원들은 연차 신청에 신중하다. 빨간 날 구분 없이 스케줄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 시간을 두고 결정하기로 한다.



어이, 이기장 어디가?”


누가 날 부른다. 선배 기장님이다. 승무원들은 ‘어디가?’로 인사를 대신한다. 유니폼을 입고 회사에 있으니 으레 비행 가겠거니.. 생각하는 거다.


“아, 기장님 저 홍콩 갑니다~ 어디 가세요?”

“어, 난 갔다 왔어 방콕~ 인천 내리는데 진짜 피곤하더라. 날씨 좋아~ 이제 집에 가야지~”


완벽한 답변이다. ‘출발지, 목적지, 기상, 공항 상황, 컨디션..’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말씀하셨다. ‘집에 가야지’까지 말씀하셨다는 것은 진짜 피곤하다는 거다. 얼른 대화를 마치기로 한다.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기장님~ 얼른 퇴근하세요~”

, 다음에 ~”





부기장 표정에 여유가 생겼다. 이제 인사를 할 타이밍이다.


“안녕~ 잘 잤어?”

“아, 안녕하십니까? 잘 잤습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아니.. 피곤해… 오늘 네가 다 해. 알았지?”

“네? 아.. 네… 저 그런데 홍콩은 아직 한 번밖에…”

“ㅎㅎ 농담이야. 긴장 풀고 편하게 비행하자~ 음.. 날씨는 좋고… 참, 비행기는 도착했어?”


관계가 형성됐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려 했는데 먹혔는지 모르겠다. 부기장 표정엔 아직 긴장감이 남아있다. 저 경직된 표정이 사라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그랬고, 누구나 그렇다. 조종사 문화는 아직 딱딱하다. 유연한 칵핏 문화를 위한 노력이 꾸준히 필요하다.






운항 브리핑을 마치고 객실 승무원들과 합동브리핑을 한다. 이른 시간에도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차림새가 완벽하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잠은 잤을까...?’ 편명, 비행시간, 날씨, 항공기 상태, 비상절차, 보안절차, 공지사항… 등을 이야기하고 브리핑을 마친다. 10분 뒤에 셔틀버스에 탑승하기로 한다. 10분의 시간 동안 다들 바쁘다. 매일 출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 오면 할 일이 많다. 메일함 정리, 매뉴얼 업데이트, 연차 신청, 오프 신청, 스케줄 확인.. 팀장님 미팅도 해야 되고, 유니폼, 가방 수선도 맡겨야 된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셔틀버스에 탑승한다.






버스에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기장은 문 건너편 넓은 자리, 사무장은 그 뒷자리, 막내 승무원들은 맨 뒷자리, 시니어 승무원은 뒤쪽 아무 데나, 그리고 부기장은 문 바로 옆에 앉는다. 어디에도 이렇게 앉으라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이렇게 앉는다. 무의식적으로 발생한 규칙이고, 그 규칙을 깨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그 규칙을 깬다면? 그는 관심병사가 된다. 부정적인 의미보단 ‘특이하다’ 정도. 하지만 그 ‘특이함’이 가끔 발목을 잡는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이 ‘관심병사’에겐 큰일이 된다.  그럴  알았어버스에서도 혼자 이상한  앉더니…”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야기에 거품이 끼고 결국 억울한 사람이 탄생한다. 웃기지 않은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다. 활기가 넘친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막내 승무원은 환전을 하러 은행에 간다. 기내 판매를 하려면 외국 돈이 필요하다. 나머지 크루들은 항공사 티켓 카운터를 지나 출발장으로 간다. 일반 승객 출입구 옆에 작은 출입구가 하나 더 있다. 장애인, 유아 및 동반 승객, 상주직원 그리고 승무원들을 위한 출입구다. 우린 이곳에 줄을 선다. 시간에 쫓기면 보안요원에게 부탁해서 먼저 들어가기도 하지만 간혹 순서를 지키라며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 억울하고 분하다. 우리 일하러  건데…’ 세계 유일 인천공항만의 독특한(?) 관행이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 구간을 통과한다. 부기장과는 항공기 안에서 만나기로 하고 잠시 헤어진다. 커피를 사러 간다. 나만의 ‘루틴’이다. ‘아아 3잔, 아떼 3잔’을 주문한다.


“어디 가세요?”


바리스타가 묻는다. 자주 오다 보니 얼굴을 기억한다.


“홍콩가요~ 퀵턴(Quick Turn)이에요. 저녁에 올 거예요~”

“새벽비행인데 안 피곤하세요?”

“괜찮아요~ 적응됐죠 뭐.. 사장님이 더 피곤하시죠. 매일 출근하시는데..”

“저는 손님만 많으면 괜찮아요~ 하하”


커피가 나왔다.


“수고하세요~”


커피 꾸러미를 들고 카페를 나선다.


이상하다저번에도 똑같은 이야기한  같은데…’






게이트에 도착했다. 출발 한시간 전이다. 여유가 있다. 지상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항공기로 들어간다. 크루들 모두 각자의 구역에서 항공기를 점검하고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느낌이 좋다. 기분 좋은 비행이 될 것 같다.


보잉737NG 기종의 계기판. 해가 뜨기 전인 새벽과 밤엔 계기판의 밝기를 줄인다. 그래야 밖이 더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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