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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에 뜨는 별 Daystar Aug 11. 2020

유비무환

연료 한 방울의 소중함

브리핑실이다. 오늘 비행은 일본 ’나리타’ 야간비행이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괜찮은데 우리가 도착할 즈음엔 바람이 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보는 ‘TEMPO’로 되어있다. 센 바람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은 1시간 이내라는 뜻이다. 비행계획서를 보니, 연료가 추가되어 있다. 운항관리사가 연료를 넉넉히 싣는 것으로 계획했다. 마음이 놓인다. 기장님이 오셨다.

“기장님. 나리타 날씨가 심상치 않은데요.. ‘TEMPO’이긴 한데 돌풍도 세고 비도 올 것 같습니다.”

“흠.. 그러네.. 추가연료가... 2000kg이네. 흠... 우리 500만 더 실을까?”

“알겠습니다!”


운항관리사에게 500kg을 추가 요청한다. 운항관리사가 고개를 젓는다.


“나리타 가는데 2500이나 더 실어요? 2000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에이~ 500만 더 실을게요~ 아시잖아요. 요즘 날씨는 이상해서 믿을 수가 없어요~”


조종사들은 연료를 넉넉히 싣고 다니길 원하고, 운항관리사는 규정에 맞춰 적당히 싣길 원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연료를 많이 실으면 그만큼 항공기가 무거워지고 연료를 더 소모한다. 연료는 곧 돈이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선 매우 민감하다. 조종사와 운항관리사가 밀당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겠습니다. 추가연료 2500kg으로 수정할게요.”

“고마워요~”





순항고도에 올라왔다. 회사에 컨택하여 나리타 기상을 받는다. 기상이 더 나빠졌다. 소나기가 내리고 있고, 기압이 상당히 낮다.


“기장님. 기상 여기 있습니다. 소나기가 내리네요.”

“음.. 그러네... 이따가 한번 더 확인하자고.”

“네.”

일본 공역에 진입했다. ‘도쿄 컨트롤’의 관제사와 교신한다. 통상적인 교신 외에는 별 말이 없다. 관제사는 우리의 목적지를 알고 있다. 별 말이 없다는 것은 특이사항이 없다는 거다. 한숨이 놓이지만 한편으론 뭔가 찜찜하다. 공항 날씨에 대해 물어보려다 이내 ‘PTT(Push To Talk : 마이크 송신 버튼)’에서 검지를 뗀다. 30분 후면 접근 시작이다. 그때 묻기로 한다. 이런 기상은 30분 사이에 휙휙 바뀌곤 한다.





나리타 공항 반경 200마일 안에 진입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기상을 듣는다.


“Narita Int’ Airport Information Z....... ‘Microburst’ over the Airport.... All Aircraft Should Standby Approach....... Follow the ATC Instruction Strictly.......(나리타 국제공항 자동정보시스템 Zulu... 공항에 강한 순간돌풍... 모든 항공기는 접근을 멈추고... 관제사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며... “


접근 불가 상황이다. 이승환이 그랬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연료를 확인한다. 추가연료를 충분히 싣고 온 덕분에 여유가 있다.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공항 근처에서 선회할 수 있다. 기장님과 상의한다.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비행을 계속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도 나리타 기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목적지 교체공항인 나고야 공항으로 회항하기로 한다.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현재로썬 그게 최선이다. 나리타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접근을 위해 기재 취급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기체가 크게 흔들린다. 객실에 터뷸런스 시그널을 주고, 안전벨트를 조인다. 기류가 바뀐 것이다. 인터컴으로 사무장과 이야기한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 승객들과 객실 승무원들 모두 자리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사무장이 일본 날씨에 대해 미리 대비한 것이다. 손발이 잘 맞는다. 합동브리핑은 이래서 중요하다.

‘접근 관제사’와 컨택한다. 우리 항공기에게 나리타공항 동쪽 공역으로 갈 것을 지시한다. 그곳에서 선회를 시키려는 모양이다. 강하를 한다. 터뷸런스가 점점 심해진다. 구름은 없는데 기류가 너무 안 좋다. 항공기가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친다.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힌다.


“기장님. 좀 더 내려갈까요?”

“아니. 들어봐. 다른 고도도 마찬가지 같은데..”


라디오가 시끄럽다. 교신이 마구 엉킨다. 선회 중인 항공기들이 조금이라도 덜 흔들리는 고도를 찾기 위해 관제사와 씨름 중이다. 관제사에게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관제사의 지시를 따르기로 한다. “띵동” 사무장으로부터 콜이 왔다. 기체가 너무 흔들려서 승객들이 불안해한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기장방송을 바라는 눈치다.


“You have control(당신이 조종하세요).”

“I have control(제가 조종하겠습니다).”


조종을 이임받았다. 기장님이 방송을 한다.


“승객 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 현재 우리 항공기의 위치는 목적지인 나리타공항의 동쪽 상공입니다. 공항 기상이 악화된 관계로 현재 위치에서 선회 중입니다. 날씨가 좋아지는대로 관제탑의 지시를 받아 접근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좌석벨트를 매시고 승무원의 지시에 잘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장방송은 힘을 가지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기장이지만 항공기의 승객들은 저 목소리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 한다. 단어 하나, 목소리 크기, 말의 속도 등 많은 것에 신중해야 한다. 그래야 승객들이 편안하다.


“I have control.”

“You have control.”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항공기는 요동치고 있다. 공항 날씨도 변함이 없다. 함께 선회하던 항공기 중 몇 대는 교체공항으로 회항했다. 연료가 부족한 것이다. 500kg을 더 실었던 게 생각난다. 지금은 연료 한 방울이 너무 소중하다. 기름이 아니라 금이다. 30분 남았다. 이제는 우리도 여유가 없다. 우리 항공기 앞에는 접근 지시를 기다리는 다른 항공기들이 있다.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항공기들이다. 순서를 지켜야 한다. 우리 항공기의 순서는 5번째다.

10분 남았다. 이제는 회항해야 한다. 당장 접근을 시작하더라도 순서를 기다리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관제사에게 나고야 공항으로 회항 요청을 하기로 한다. 그때 갑자기 교신이 들려온다.


“AirIndia 123, Direct to..... Descend to 3000ft, Cleared for approach runway34, Report established.”


접근이 시작됐다. 날씨가 좋아진 모양이다. 맥박이 빨라진다. 서두르면 접근이 가능할 듯한데 빠듯하다. 그때 또 교신이 들려온다.


“Narita Approach, Speedbird890, request divert to...”


우리 앞에 있던 항공기 한대가 접근을 포기했다. 우리보다 연료가 더 급하거나, 현재 나리타 공항 날씨에 착륙이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됐다!’


이제 순서만 기다리면 된다.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계산된 연료량을 믿는다면, 이대로 접근해서 착륙하면 된다. ‘500kg’이 우릴 살렸다.






착륙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공항은 평온했다. 기장님과 수고했다는 악수를 나누고 ‘Flight Logbook(비행일지)’을 정리한다. 브리핑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500kg을 추가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지금쯤 나고야 공항에 가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승무원들이, 모든 승객들이, 모든 지상직원들이, 모든 회사 직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Divert(회항)’ 사태를 수습하고 있었을 것이다. 조종사들은 법정 비행근무시간을 따져야 될 것이고, 최악의 상황에는 인천공항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탁월한 결정이었다. 기장님의 머뭇거림, 그 반짝이는 10초가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RKSI : 인천공항,  RJAA : 나리타공항,  RJGG : 나고야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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