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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에 뜨는 별 Daystar Aug 22. 2020

씨발!!! 랜딩 똑바로 하란 말이야!!!

비우고 또 채우고...

항공사에 입사하고 수습 부기장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운항 승무팀, 기술팀, 훈련팀, 표준팀, 평가팀 등 각 팀에서 하는 일에 대해 개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중에서 어떤 한 기장님이 해주셨던 말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직업으로서 조종사가 좋은 가장 큰 이유가 뭔 줄 아나?”

돈? 시간? 다들 어리둥절하며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를 생각하고 있을 때 기장님이 말씀하셨다.

“깔끔하다는 거야.”

‘깔끔하다고? 뭐가? 청결하다는 건가? 유니폼을 입으니 단정하다는 거? 뭐지?’

“조종사는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다 끝이야. 비행 중에 날씨가 안 좋았든, 기장한테 깨졌든, 관제사 하고 다퉜든, 비행기가 말썽이었든... 어쨌든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는 순간, 그 순간으로 임무는 종료되는 거라고. 나쁜 기억은 다 항공기에 두고 내리라는 말이야... 어때? 깔끔하지 않아?”

그랬다. 조종사의 가장 큰 임무는 ‘안전 운항’이고 그 다른 어떤 것도 그것을 대체할 순 없다. 안전 운항을 하기 위해선 비행을 하는 그 순간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고, 모든 것을 쏟아 붓기 위해선 다른 고민이나 잡념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비행 중 있었던 나쁜 기억은 다 지워버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 비행에 다시, 온전하게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다.






부기장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다. 회사의 모든 부기장들이 기피하던 모 기장님과 비행을 하게 되었다. 그 기장님은 회사 규정은 무시한 채, 자기 마음대로 비행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회사의 비행 절차는 무시하고 자신만의 비행 스타일을 부기장들에게 강요했다. 어떤 부기장은 그 기장님 때문에 탈모가 생기기도 했고, 어떤 부기장은 이직을 결심하기도 했다. 나 또한 그 분과 비행을 하게 되면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되고 그저 스케줄이 변경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날짜가 가까워지고 스케줄이 그대로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마음으로.

그 기장님은 ‘Manual Flight(수동 비행)’을 강조했다. 아니, 강조가 아니라 강요했다. 이착륙은 물론이고 상승과 강하, 심지어 Cruise(순항) 상태에서도 수동 비행을 하도록 강요했다. 물론 수동으로 비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전 비행’이라는 측면에서 수동 비행은 결코 ‘안전’ 하지 않다. 하루 최대 8시간이나 되는 비행시간 동안 계기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도 1 knot, 고도 1 ft를 한순간도 틀리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조종사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Auto Pilot(자동 비행)’이라는 비행 보조 장치가 있는 것이고, 조종사는 그 장치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

그 기장님이 강조했던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Landing(착륙)’이다. 랜딩은 상황에 따라 달리 해야 한다. 비, 눈, 바람의 방향, 세기, 돌풍 정도, 활주로 상태, 길이, 넓이, 앞뒤 항공기 간 간격, 관제사의 요구 등 랜딩을 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이 정말 많다. 그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서 상황에 따라 세게 내리기도 하고, 부드럽게 내리기도 하고, 옆으로 비스듬히 내리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모든 랜딩의 종류는 달라진다.






파워를  이렇게 많이 빼는 거야! 집어넣어!!!”

기장님이 갑자기 내가 잡고 있던 ‘Throttle(쓰로틀 : 파워 조절 레버)’을 확 밀어버린다. 예상하지 못했던 파워가 갑자기 확 들어가 버리니 항공기의 ‘Nose(노즈 : 항공기의 앞부분)’가 훅 위로 들린다. 항공기를 다시 안정시키기 위해 ‘Yoke(요크 : 조종간)’를 아래로 누른다. 요크를 아래로 누르니 속도가 확 높아진다. 속도를 낮추기 위해선 파워를 줄여야 하는데 방금 신경질적으로 파워를 확 밀어 넣어버린 기장님이 또 소리를 칠까 봐 주저하고 동작이 느려진다.

정신 안차려!!! 파워 빼야   아냐! !!!”

이번엔 쓰로틀을 확 당겨버린다. 항공기 노즈가 아래로 훅 떨어지고, 속도가 갑자기 확 줄어든다.

... 뭐야 진짜...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파워를 넣었다 뺐다 해버리면 나더러 랜딩을 어떻게 하란 말이야 도대체... .... 그래도 끝까지 해야지. 좀만  집중하자 집중... 파워 잡고.. 속도 잡고.. 자세 잡고.....’

정신을 가다듬고 비행에 집중한다. DA(Decision Altitude : 착륙 결심 고도)가 지나고 활주로에 도달했다.

“50. 40. 30.... 20.... 10. !”

항공기가 ‘쿵’ 소리를 내며 활주로에 내렸다.

 씨발!!!!!”

기장님이 욕을 했다. 그것도 엄청 크게. 비행 중에 욕을 들어본 건 처음이다.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잘 못 들은 거겠지...

설마..  뭐라 하는지 들어보자. 진짜 욕이 맞는지.’

씨발!!  당겨야   아냐!!! 장난해?!!!”

내가 잘 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욕을 했다.

장난 지금 나랑 하나?  사람이 지금 제정신이 맞는 건가? 비행 중에 욕을 하다니? 아니, 내가 비록  못했다 하더라도 이게 그렇게 쌍욕을 들을 일인가? 더군다나 그렇게 세게 내린 것도 아니잖아.  정도면 부드러운  아니어도 그냥 무난하게 내린 건데...?’

 Flare(플레어 : 랜딩 마지막 단계에서 항공기의 강하율을 줄이기 위한 조작)  어디 ? ? 어디 보냐고!!! 활주로 끝단 봐야   아니야!!!”

난 끝단을 봤다. 그런데 끝단을 본다고 다 잘 내리는 것은 아니다. 끝단 말고도 고려해야 할 게 많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항공기를 조작해서 랜딩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한 것 같지가 않았다. 난 그냥 꼭두각시 역할을 한 것 같았고, 기장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항공기를 억지로 여기까지 끌고 온 것 같았다. 거기에 쌍욕까지 듣다니...

“죄송합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 날의 충격은 꽤 오래갔다. 매 번 비행할 때마다 누군가 내 조작을 방해하는 것 같았고, 랜딩을 잘하고 나서도 주눅이 들었다. 온전하게 내 비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깨끗이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는데, 그래야 매 번 새로운 마음으로 비행을 할 수 있는데 비우질 못하고 있었다. 착륙과 동시에 모든 것이 리셋되는... 그래서 다음 비행에 다시 나의 모든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런 깔끔한 비행을... 못하고 있었다.






몇 년 뒤, 그 기장님은 회사를 떠났다. 비행 문제 외에도 다른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고 했다. 몇 차례 회사 차원의 경고가 있었고, 결국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왜 그렇게 항상 모가 나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부기장들을 닦달하고 결국,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비행 중에 욕까지 내뱉는 그런 처절한 상황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항상 나쁜 기억들과 함께 항공기에 올라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PS. “기장님. 다른 회사에서는 조금만 더 비우세요. 부기장들 너무 닦달하지 마시고요. 부족한 게 있으면 부드럽게 말씀해주세요. 모르는 것 같아도 다음번에 만나면 조금은 나아져 있을 거예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기장님이 화내도 웃기만 한다고 바보는 아닙니다. 다들 가정이 있고, 아들딸 밤낮없이 비행한다고 걱정해주시는 부모님도 계실 겁니다. 조금만이라도 인격적으로 대해주세요. 아시겠죠? 부탁드릴게요!!! 씨이발...


비 오는 활주로. 노면이 젖어있다. 이런 날엔 의도적으로 세게 랜딩하기도 한다. 랜딩 후 활주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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