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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Jul 29. 2024

[반려견 투병일기 06] 모아둔 돈을 쓰기로 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도, 하루 중에 6시간 이상을 아무것도 못하는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가 닥치고 나니 우리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건강과 돈이었다. 큰돈이 들어가는 결정을 했지만, 막상 돈을 더 벌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고민했다. 이미 천만 원이 넘는 돈을 할부로 결제했고, 앞으로 들어가야 할 돈은 치료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천만 원, 그 이후에 추적검사와 약물치료등으로 천만 원 이상이 들어갈 상황이었다.


 우리는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하고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도 큰 언성을 높인 적도 없고 서로를 인정하며 대화로 풀어나가고자 했다. 갑작스럽게 회사를 관두는 순간이 와도 응원했고, 서로의 꿈을 찾아가길 기도했다. 사소한 말다툼 정도는 있었지만 뒤돌아서면 까먹을 정도로 가벼운 일들이었다. ‘돈’이라는 현실이 주는 무게는 서로의 마음을 곪게 하고 있었다. 여유가 없어졌고 돈을 써야 하는 일에 한숨부터 나왔다. 크게 부족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흔히 ‘돈미새’라고 일컫어지는 것처럼 정말 모든 것에 돈을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둘 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성장했고,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왔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혼자 벌어서 혼자 메꾸는 상황이 힘들었고, 나는 일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괴로웠다. 근처에 있는 공장에 가서 새벽일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이상 그것도 무리였다.


 우리는 결국 모아둔 돈을 쓰기로 결심했다. 일단 할부로 결제해 둔 병원비 일부를 해결하고 한도를 다시 돌려놓기로 했다. 돈을 전부 쓰면 또다시 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당황할 수 있으니 우리가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금액을 사용하고 높은 할부 이자를 그냥 갚아나가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분 무이자가 가능했기에, 엄청난 금액의 이자를 내지는 않았다(물론 어느 정도 부담은 되는 게 현실이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 일단 급한 걸 해결하자. 이렇게 있다간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 아이의 치료를 시작한 이상 끝은 봐야 하잖아.”라며 그렇게 묵혀두었던 돈을 꺼내 카드값을 냈다.


 아이가 건강해지고 있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자. 아니 아이가 지금 불편해하는데 괜찮은 거겠지. 그래도 전보다 밥도 잘 먹고 살도 좀 쪘고 산책도 잘하니 건강해지고 있는 거 맞지? 첫 발작 이후로 발작도 없고 물론 피를 한 번 토했지만 큰 일도 아니라고 했으니까 건강해지겠지? 처음 들었던 기간보다 우리랑 더 오래 함께 하겠지? 우리 아직 젊으니까 내가 일만 시작하면 그 돈 메꾸는 건 아무것도 아닐 거야. 솔직히 큰 리스크이기는 한데 곧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는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이런 이야기들로 서로를,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올해 진로를 다시 변경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모아야 했고, 진로를 위한 시간을 쓰고 있었다.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몇 년만 고생하자, 했는데 그 모든 건 다 무너졌고 또다시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이 상황은 내 꿈을 응원하던 남편을 이제 내 꿈을 포기하면 안 되냐고 넌지시 묻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반복되는 현실의 괴리감에 나는 스스로를 좀먹고 있었다, 아니 좀먹고 있다. 그래도 일단 아이만 생각하자, 그게 우리가 선택한 길이니까, 그렇게 살아보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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