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케어가 필요하다
모아둔 돈으로 가장 급한 문제를 해결했다. 아이의 건강이 호전되는 건 이제 꾸준한 치료와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현실적인 돈 문제를 직면하고 나니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원래도 일 하는 걸 좋아하는 워커홀릭인 데다가 앞으로 들어갈 돈도 꽤 되기 때문에 당장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는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상황이라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진 지금은 코로나 창궐시대처럼 재택근무가 많지 않았다. 반려동물과 함께 출근할 수 있는 회사는 드물었고, 당분간은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하기 때문에 출근을 하는 건 무리였다. 아이 병원으로 하루 6시간을 썼기 때문에 당장 재택을 하기에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파트타임으로라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일자리 자체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하루에 1-2시간씩 여러 사이트들의 공고를 확인했지만 답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한 뒤 투잡을 하겠다고 말했다. 집 근처에 공장들도 많으니 뭐라도 하겠다고 하는데, 그걸 지켜만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원래 직업 특성상 하루 종일 서서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머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잠이 드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가서 일을 또 하고 새벽에 돌아온다면 분명 신체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남편 퇴근 후에 내가 나가서 일을 하겠다고 말하며 저녁 파트타임을 찾기 시작했다. 공장이나 물류의 경우 새벽에도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아침이나 낮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 건 위험했다. 저녁 파트타임은 남편의 퇴근시간과 맞지 않아 구하기가 힘들었다.
경기가 어렵다, 어렵다 말이 많이 나왔어도 일자리가 이렇게나 부족하다니. 지금도 많은 회사들이 최저임금 겨우 맞춘 월급을 주고 급여를 조금 더 준다 하면 주말에도 출근을 하거나 근무시간이 주 40시간을 넘었다. 주휴수당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루에 2시간으로 사람을 구하는 곳도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병원에 한 번 방문할 때 드는 비용은 대략 75만 원. 약을 처방받는 날에는 30만 원 정도 더 붙은 100만 원. 앞으로 남은 치료들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원래도 잠을 많이 자는 편이 아니니 간절한 마음으로 당근마켓의 동네알바나 근처 도시의 맘카페를 찾아봐도 나를 위한 일자리는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카드 한도는 점점 줄어들고, 통장에 보관했던 돈도 점점 줄어든다. 비상금으로 모아두었던 돈도 모두 써버리고 나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이 난관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고민을 오래 들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답이 없는 고민을 계속해서 해봤자 나만 힘들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고민들이 하나의 그물에 들어있는데, 그물을 뜯지도 않고 그 상태로 고민을 해봤자 그 고민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더 큰 고민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선 그물을 뜯고,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된 나의 고민은 ‘우선 아이의 치료에 집중하자.’였다. 사용 한도와 통장의 잔고는 줄었지만, 당장 아이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충분한 돈이었다. 이미 비어버린 것은 채워 넣으면 되는 것이니 일단은 아이에게 모든 걸 집중하자,라는 생각으로 다른 고민들은 잘 보이지 않는 웅덩이에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