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월 whalemoon Aug 19. 2024

[반려견 투병일기 09]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후회

다견 가정은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배로 볼 수 있다는 점, 서로의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친다는 점은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이 힘들고, 돈도 배로 들고, 서로의 좋은 습관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 하나하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주고 싶지만 그러기 어렵다는 것이 그중 최악일 것이다.


 최대한 골고루 사랑을 주고자 나누고자 했다. 하지만 아픈 아이가 생기다 보니 25%씩 분배되던 사랑이 이 아이에게 50% 이상 가버렸다. 나머지 50%를 다른 아이들이 나눠 받게 되었다. 정확히 퍼센티지로 사랑을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분명 아픈 아이에게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건 당연지사였다. 분변 상태도 체크해야 하고 음식 섭취량이나 산책 시간 등등 모든 걸 더 신경 써야 했고, 다른 아이들과 분리하여 24시간 체크가 필요한 상황이니 당연히 아픈 아이는 늘 내 옆에 있었다. 언제 발작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예민하게 만든 상황이었고 아이의 잠꼬대, 기침 소리, 잠투정 등등 모든 걸 확인했다.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금붕어 똥처럼 계속해서 붙어 있었다. 거의 나와 한 몸과 다름없는 듯. 산책을 하는 시간도 더 길어졌고, 놀아주는 시간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아픈 아이에게 사랑을 주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는 하지만 미안했다. 한 아이만 케어하는 집보다 배로 노력해야 하는 다견 가정에서는 어떻게 해줘도 계속 부족하다. 시간과 정성, 사랑이 아픈 아이에게 쏟아지니 다른 아이들의 질투가 심해졌고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횟수도 늘었다. 치료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면 다른 아이들을 더 사랑해 줘야지 생각하지만, 막상 집에 오면 힘들고 지쳤다는 이유로 일단 누워버리는 내가 한심했다. 억지로 멱살을 잡고 나를 일으켜 한번이라도 더 챙기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이들은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사료도 간식도 아픈 아이는 특별하게 먹여야 했고, 손이 많이 간다며 하지 않던 수제 간식도 만들었다. 모든 생활 습관을 바꿔가며 아이와 아이들에게 노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었다. 만약, 다른 아이들도 아파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아이처럼 오롯이 모든 시간과 돈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적지 않은 돈, 짧지 않은 시간, 그리고 아슬아슬 버티는 내 몸과 정신 상태.


 아이를 치료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긴 시간의 외출도 아니었고, 이미 쓴 돈도 아니었고, 밀착 케어도 아니었다. ‘후회’. 후회라는 감정이 좀 먹듯 슬금슬금 올라오는 게 가장 힘들었다. 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리 잡는 생각. 다른 아이에게 해주기 어려울 거라고 고민하는 데, 이 아이에게만 특별 대우를 한 게 아닐까. 돈을 썼지만 치료하지 않았을 때와 치료했을 때의 차이가 얼마나 클까. 마이너스난 돈을 메꿔야 하는데, 10원짜리 한 장 쓰는 것도 고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까. 어떤 이유든 펫로스 증후군을 겪을 것은 뻔한데, 괜히 아픈 애를 데리고 고생시킨 게 아닐까. 다른 아이들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아프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래서 나도 이해해 줄까. 이렇게 후회라는 감정을 갖는 건 정말 잘못된 게 아닐까.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자고, 그래봤자 나만 힘드니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번에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 된다고 살던 나로서는 치료를 선택해 후회했으니,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치료를 선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생명 연장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일 텐데 그럼 나는 후회하지 않을까. 어떤 선택을 해도 나는 후회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선택이 조금 더 덜 후회하는 방향일까. 이건 시험문제도 아니고 실험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반려인이어야 맞는 걸까.


 잘 챙겨주지 못해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하던 감정은, 치료를 후회하는 일말의 생각이 들자마자 아픈 아이에게까지 미안해졌다. 치료를 결정할 때 도움을 준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사실 지금은 방사선 치료가 다 끝나고 추적 검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방문해 피검사를 하고 약을 받아온다. 끝날지 않을 것 같던 스테로이드의 양은 2일에 한 번 먹을 정도로 줄었고, 아이의 컨디션은 아프기 전만큼 좋아졌다. 다음 달에는 MRI를 찍어 종양의 크기를 확인할 예정이며, 스테로이드를 아예 끊을 수도 있다. 만약 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이미 내 옆에 없을 수도 있다. 글을 쓰는 나를 바라보다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면 또다시 후회한 나 자신을 원망한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집의 아이들은 최소 8살부터 14살까지 노견이라 불리는 나이다. 다음 달 검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알 수 없다. 그때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후회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은 해야 한다. 그 일이 무엇일지 잘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해보자.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겠지라며 새벽에 퇴근 한 나를 억지로 일으킨다.

이전 08화 [반려견 투병일기 08] 이러다 내가 병원에 가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