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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Aug 26. 2024

[반려견 투병일기 10] 지금 우리 아이는 꽤 건강하다

방사선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

우선 본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 반려견 중 아빠 강아지인 짜장이가 지난 금요일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아이가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길 한 번만 바라주세요.





 12번의 방사선 치료가 끝이 났다. 마지막날은 MRI를 촬영하는데 기존보다 종양의 크기가 줄었다는 걸 확인했다. 사실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든 경우 악성을 예상해야 하고, 조금 줄어든 경우 양성을 예상해야 한다고 했는데 상담결과 어쨌든 악성은 아닌 걸로 볼 수도 있다는 애매한 대답을 들었다. 다만 그 애매한 대답조차 감사했다. 스테로이드의 양은 처음 먹던 양의 반으로 줄었다. 처음 간호사 손에 안겨서 사경을 헤매듯 멍하게 나오던 아이는 간호사 선생님이 부르는 본인의 이름 소리에 우다다닥 자기 발로 뛰어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에 회복을 하고 차 안에서 본인을 만져달라며 나를 계속 바라보기도 한다. 12번의 치료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 조금 빠른 길을 찾아 평소보다 20분 정도는 절약하게 되었다. 그 20분은 다른 아이들, 혹은 나에게 조금 더 쓸 수 있다.


 3개월 뒤 정식 추적 검사인 MRI 촬영 전 까지는 계속 지켜봐야 하고, 6개월, 9개월 그리고 그 후로도 지켜봐야 하지만 처음 발작을 일으켰던 4월 말의 그날에 비하면 아이는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한 손으로 들어도 가뿐했던 8.4kg의 아이가 지금은 헉헉 거리면서 안고 가야 할 정도로 살이 올라왔고 30분 정도의 산책은 가뿐해졌다. 재발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치료가 끝나던 시점인 6월, 아이는 확실히 건강해졌다.


 브런치에 아이에 대한 기록을 하기로 결심하고 첫 글을 올렸던 날이 생각난다. 난 그날 아이의 첫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는 치료를 마친 지 2달이 훨씬 지났고 굉장히 건강해졌다. 큰 걱정은 사라졌지만, 아이의 배변이나 식사, 컨디션 등은 꾸준하게 체크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다.


 우선 나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헀다. 계속해서 들여보던 구직사이트에서 편의점 주말 아르바이트를 발견했다. 집에서 걸어가면 5분(걸음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 지인과 걸을 때 한 마디씩 듣곤 한다) 정도, 차로 가면 1-2분 내에 도착하는 거리. 주말 저녁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지금 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아니라 이런 시간에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2024년 최저시급보다 살짝 높은 시급 10,000원. 주택가이지만 주변에 편의점이 워낙 많기도 하고 외국인들이나 평일에만 거주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동네라 그렇게 바쁘지도 않다. 물류 들어오는 게 편의점 업무 중 가장 힘들다고도 볼 수 있는데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는 많아봤자 2박스 정도의 냉장 물류(우유, 빵 등)만 들어온다. 20살 때 초중고가 모여있는 곳에서 비슷한 시간에 일을 한 경험이 있다. 물류를 받지 않는 시간이기는 했지만 맛없는 석식 대신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햄버거 등을 먹으러 오는 고등학생을 비롯해 2-3번째 학원에 들리기 전 간식, 혹은 저녁 식사를 하러 오는 학생들로 늘 붐볐다. 당시 최저시급보다도 적게 받으면서 일을 했었는데 지금 나이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식은 죽 먹기와도 다름없었다. 점장님은 폐기나 반품 물건을 마음껏 가져가도 괜찮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강아지’를 데리고 출근하는 것에 대해 “우리 편의점은 손님들도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곳이에요.”라며 당연히 괜찮다는 듯 말했다. 보통 주말은 8-10번이고 9시간 기준으로 72만 원에서 90만 원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병원비에 보탬이 될 수 있고, 책 한두 권 정도는 남편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사실 어차피 늘 1-2시 넘어서 자는 사람이니 굉장히 쉬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서 바로 잠들지 못해 빠르면 3-4시, 늦으면 새벽 6시까지 잠을 자지 못하다 보니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2번만 고생하면 난 그럭저럭 괜찮은 보호자, 아내가 될 수 있음에 만족하고 있다. 일하는 직원들이 힘들다며 라면 국물 버리는 곳에 ‘고장’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새벽 2시에 마감을 하지만 외부에 있는 매대를 들여놓는 수고를 줄여주기 위해 “누가 훔쳐가면 어쩔 수 없지, 그만큼 힘든 사람일 거야.”라고 말하는 점장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8월 말에 접어든 지금, 일주일 후 아이의 첫 정식 추적검사를 받으러 간다. 아마 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와 안정제를 먹어서라도 빠르게 잠이 들고 눈을 뜨자마자 병원을 갈 예정이다. 많이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기 위해, 아이의 기대 수명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늘 답답해하던 꽉 막힌 한강 주변의 도로를 지날 예정이다.


 4월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아빠 강아지가 갑작스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전조 증상이라고 하기엔 전날 밥을 1/3 정도 남긴 것이 전부였고, 13년 동안 여름에 너무 더워 입맛이 없거나, 혹은 특식이 나온 다음날엔 밥을 남기던 아이라 대수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배변 상태도 좋았고 평소와 다르게 보이는 건 전혀 없었다. 다음날 새벽 6시 유난히 헐떡이는 숨소리에 눈이 떠지고 더워서 그런가, 라며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선풍기를 더 틀어줬다. 30분 정도가 지나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두 눈이 나만 쫓고 있어서 상태를 확인해 보니 게거품을 조금씩 물고 있었다. 경련이나 발작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온몸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 터치를 하려고 하면 으르렁 거리는 걸 보고는 바로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는데 다리에 힘을 제대로 주지도 못하고 자꾸 푹푹 가라앉았다. 우선 아이를 산소방으로 입원시켰고, 어느 정도 진정되면 피검사 외에 다른 검사를 하기로 했다.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말에 집에 있는 아픈 아이에게 약을 먹일 생각으로, 남편을 출근시키고 돌아갈 생각으로 난 집에 왔다. 빠르게 할 일을 마치고 다시 병원에 가는 길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걸렸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전화를 받으니 10초 전쯤에 아이가 죽었다,라는 사형 선고 같은 말을 했다.


 24시간 동물 병원인 그곳에 내가 아이를 안고 방문했을 때는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있었다.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원장 선생님이었고, 그분은 내 모든 강아지들을 다 보고 출산을 도와주시던 분이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해 직접 소식을 알렸고 출근시간이라 막히는 차 안에서 난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뛰어들어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가장 외딴곳에 있는 수술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만났다. 아직도 너무나 따뜻하고 마치 잠을 자는 듯 한 그런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노령견들과 함께 한다는 건,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난 아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크지만, 그래도 가장 큰 마음은 사랑이고 아이들이 좋은 추억만 갖고 강아지 별로 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내 감정은 잠시만 접어둘 수 있기를, 잘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꿈에라도 나와주기를, 다음 주 있을 검사에서 좋은 소식이 있기를, 모두 아프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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