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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군 Oct 18. 2023

c'est la vie(세라비)



오르셰 역시 엄청 큰 미술관이지만 루브루를 체험한 후라 그런지 적어도 몇 작품 앞에서는 멈춰서 탐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밀레의 유명작품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옆의 이 그림 <양 떼 목장, 밝은 달빛>은 보는 순간 깊고 푸른 바다에 풍덩 빠트려 나를 채우는 그런 그림이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 돌게 해 다시 한번 보게 한 그림.

해가지고 밝은 달이 떠오르는 시간. 목동도 양 떼들도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길고 긴 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쉼이 필요한 그들의 밤은 포근할 것이다.


프랑스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예술학도들에게 꽤 관대하다. 오르셰는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에겐 공짜이다. 내가 줄을 섰으면 한참이었을 텐데 서희덕에 기다리지 않고 티켓을 구했고, 여유 있게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다. 심지어 늦잠을 자서 늦게 나갔는데도 말이다.

사실 그날은 기분이 심히 좋지 않았다. 이런 황홀함이 이제 끝이 날 거란 생각을 하니 두렵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정신을 어디다 두고 온 것처럼 살았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온전한 내 정신이, 아주 맑고 호기심이 가득하고 생기 있는 나의 정신이 육체를 채워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잊고 지냈던 ‘꿈’, ‘희망’ 이런 것에 대한 설렘이 다시 꿈틀거리는 느낌.


그 반짝임을 뒤로한 채 서울 가면 다시 풀어내야 할 숙제, 걱정에 대해 토로했다. 서희는 말했다.


c'est la vie(세라비) : 그게 인생이야.


그러하다.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삶이고 인생이다. 우리는 고통받고 아파하지만 삶을 통해 다시 회복하고 치유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내가 여행객이었기 때문에 느낄 수도 있었던 파리에서의 황홀함은 나에게 치유의 힘을 주었고, 내일 아침 힘껏 이불밖으로 나갈 용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날의 대화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세라비를 아직 가끔 가슴속에서 되뇐다. ‘그렇지. 이것이 인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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