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방에서 빨래를 한다. 빨아야 할 옷들이 한가득이다. 프랑스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빨래를 마치고 건조기에 바삭 말려 하나하나 차곡차곡 개어 바구니에 담는다. 그간의 분주함과 남루함을 조금씩 빨아낸다. 형이 사는 동네 빌쥐프(Villejuif)는 ‘유대인 정착지’을 뜻하는 옛 프랑스어를 라틴어로 표기한 ‘빌라유다(Villa Yudea)’에서 유래했다. 빨래를 하며 가만히 앉아 지켜보니 다양한 이민자들, 다양한 인종들이 많다. 과연 이민자로써의 그들의 삶은 어떨까? 빨래를 하면 묵은 때가 깨끗하게 벗겨지는 것처럼 타지에서 겪을 그들(와늬형두)의 서러움과 외로움도 깨끗하게 씻겨지기를 바랐다. 최근에 수업하는 학생들과 뮤지컬 ‘빨래’를 보고 와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완희형이 새벽부터 투어를 나가서 늘어지게 잔 후 빨래를 하고 왔다. 침대에서 빈둥대다 슬슬 배가 고파 뭘 먹을까 고민 후 갈레트라는 음식이 맛있어 보여 마레지구를 갔다.
파리의 지하철은 이제 익숙하고, 반바지에 슬리퍼에 백팩을 메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니 로컬이 된 기분이다.
갈렛을 맛있게 먹고 와인도 한잔 하니 적당히 기분이 노곤해져 공원에 앉아 책을 좀 읽다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도 조금 보다가 피카소 박물관이 있어 피카소 작품들도 재미있게 감상한 후에는 보주광장을 지나 바스티유 광장까지 걸었다. 생 마르탱 운하를 걷다가 근처 니콜라에서 와인을 산 후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 센강을 따라 쭉 걸었다. 맛있는 빵을 먹고, 치즈도 사서 와인이랑 같이 먹고, 강변에서 노인분들이 추는 재즈와 스윙, 탱고를 넋 놓고 보다, 벤치에서 잠깐 누워 있다가 허기저 라멘을 먹으러 갔다. 라멘을 맛있게 먹은 후 구글 맵을 보니 근처에 재즈바가 있다. 최근 카사코로나에서 너무 황홀한 재즈공연을 봤고, 부기우기도 좋았고, 재즈에 대한 좋은 기억이 가득하던 찰나에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라라랜드에 나온 재즈바 라니! 안 가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아 바로 달려갔다.
Le Caveau de la Huchette 르 까보 들 라 위셰뜨
맥주 한잔과 재즈, 사람들은 춤을 춘다. 바 안의 붉은 조명과 드럼, 피아노, 트럼펫 소리가 기분 좋게 어우러져 날 적당히 들뜨게 한다. 조용히 리듬을 타는데 누가 날 부른다.
“You can dance? dance with me.”
“sorry, i can’t dance”
하지만 그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중앙으로 나갔다. 난 뭐에 홀린 것처럼 따라 나간다.
“i feel nervous”
“just chill~”
이라며 스텝을 하나 둘 알려줬고, 나는 천천히 따라 했다. 하지만 지독한 몸치인 나답게 계속 뚝딱뚝딱 거렸다. 그 아이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지만 재미있게 두 곡이나 함께 춤을 춰줬다. 그 친구의 춤은 나비 같았다. 바 안의 열기와 긴장 때문인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고 노래 한곡을 더 들은 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에 와 뻗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기분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지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충만하다. 그렇기에 난 피카소도 보고, 재미있는 스윙댄스도 보고, 라라랜드에 나온 재즈바도 경험했으며 (춤을 출 땐 chill 하지 못했지만) 춤도 췄다.
그 친구가 웃으며 건넨 ‘just chill~’ 이란 말이 계속 귓가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