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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군 Oct 01. 2023

닭볶음탕


완희형 관찰 일지. 아침에 눈뜨면 불어공부, 자기 전에 불어공부, 지하철에서 불어공부.

에펠을 보고 집에 와 맥주 한잔을 더 했고, 형은 불어공부를 늦게 까지 한지 넉다운이 되어있다.


어제는 갈비찜이었는데 오늘은 닭볶음탕이 끓여져 있다. 형이 수지에 살 때 형네 집을 놀러 가면 항상 닭볶음탕을 해줬는데 그때보다 실력이 더 향상된 것 같다. 아침에 꼭 바게트를 먹으러 가려했것만 늦게까지 요리하고 잠든 형의 정성에 닭 한 조각을 주워 먹으니 너무 맛있어 선채로 닭 반마리를 먹었다.


형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나가 집 앞 동네 카페에서 바게트를 먹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갓 구운 바게트는 정말 맛있다. 아니 파리에서 먹었던 빵은 다 맛있다. 프랑스는 지중해성 기후와 서안 해양성 기후로 밀 재배가 용이하고, 빵이 하나의 문화로 인식이 되어 전통 제조법만을 고수한다. 빵에 대한 열정과 고집은 나 같은 빵 애호가를 만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자다가 걷다가 바게트 먹고 커피 마시고 와인마실 심산으로 왔는데 잠깐 사이 의도치 않게 참 바쁘게 달렸다. 감사함으로 멍 때리고 있었는데 형에게 전화가 왔고,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완희형은 방지턱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나에게도 맥주를 한잔 주며 형은 말한다.


"마셔. 이게 바로 파리지앵이야.."

"형 이건 파리지앵이 아니라 그냥 알코올중독자인데요?" 깔깔깔.


우리는 그냥 막 걸었다. 걷다가 양파스프와 와인을 먹고, 또 걸었다. 복원 중인 노트르담도 보고, 한때 이름만 들어도 절절해지던 퐁네프도 걷다가 잠깐 앉아 납작복숭아를 먹고 착즙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시테섬을 한 바퀴 돌고, 100년 전쯤엔 헤밍웨이가 낚시를 하던 베르갈랑공원의 뾰족한 끝 부분, 아름드리 드리운 버드나무아래에 누워 단 낮잠을 잤다. 그곳에는 몇몇의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사촌동생은 파리를 생각하면 찌린내만 기억에 남는다고 했지만 지금의 파리는 올림픽을 준비 중이라 그런지 매우 깨끗했다.(쥐는 몇 마리 봤는데 라따뚜이가 생각나서 귀엽단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한국의 쥐보다 훨씬 작았다.)


조금 더 걷다가 형은 잠깐 일을 하러 갔고, 난 퐁피두센터 도서관이다. 이곳은 매우 조용하고 넓고 쾌적하다. 음반도 책처럼 보고 들을 수가 있어 가만히 앉아 Miles davis를 들었다. 또 멍 때리다가 책을 읽었다. 평안했다. 그러다 문득 '이 순간을 분명히 그리워할 거야.'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지금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 왜냐? 형이 돌아왔고, 우리는 첫날 갔던 쌀국수집을 갔다. 숙취에 한 입도 먹지 못했던 그 쌀국수를 먹었고, 나 역시 파리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그 쌀국수가 단연 1등이다.(완희형이 해준 음식 제외) 13구에 있는 kok이라는 식당이구요, 현금만 받습니다. 또 먹고 싶어요.


형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파리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니 예술적인 외관 말고도 익숙한 도로와 현대식 건물들도 눈에 띄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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