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군 Sep 28. 2023

몽생미셸


am6 알람이 울렸다.

"일어나 투어 가자."

"형. 저 못 갈 것 같아요. 저도 가야 해요?"

"다 얘기해놨어 가야 해."


완희형과의 첫 만남이 생각난다.

"너 군대는 갔다 왔어?"

"네. 저 해병대 근무 했는데요?"

"니가?"

"형은요?"

"형도 해병대 나왔어."

"형이요?"

우리는 서로가 만나 해병 중 가장 해병대스럽지 않은 사람이라며 낄낄댔다.

하지만 지내보니 형은 그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다.


난 복날 도살장 끌려가 듯 절뚝이며 어두컴컴한 프랑스의 밤거리를 걸었다.

여기가 이태원인지 파리인지 구분도 못 하겠는데 형은 또 트램을 타봐야 한다며 20분가량을 더 걸었다.

형이 가이드 때 쓸 차량을 픽업하고 간 만남의 장소 트로카데로 광장. 이른 시간이었지만 일출과 함께 아름다운 에펠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palais de chaillot은 인산인해였다. 눈을 꽉 채운 에펠 뒤로 피어오르는 붉은 일출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속으로 '아 죽겠다.' 란 생각뿐. 따듯한 커피를 한잔 사들고 간 약속의 장소. 커피가 맛있었던 기억은 선명하다.


탄 사람이 모두 '출발!'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차를 타고 장완희 가이드와 함께한 오늘의 여행.

우리가 오늘 투어 하는 지역은 노르망디(La Normandie)라는 지역인데 그 지명은 북쪽의 사람들(North men)에서 유래한 것으로, 북유럽의 바이킹이 9세기에 쎄느강을 거슬러 올라와 살던 땅이다.

이날의 코스는 모네가 사랑한 정원이 있는 마을 '지베르니', 아름다운 항구도시 '옹플뢰르', 그리고 '몽생미셸'.

한국으로 치면 이 일정은 대전을 들렸다가 대구를 들렸다가 부산을 찍고 오는 코스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투어를 하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 밖에 없다. 위대한 나라.


금세 차에서 곯아떨어졌는데 잠깐 눈을 떴을 때 넓게 펼쳐진 초록의 들도, 들판 위의 흰색 소도, 아름답단 생각도 잠시.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할 만큼 피곤했고, 머리가 아팠다.


겨우 도착한 지베르니. 모네가 사랑했던 정원.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다."

모네는 평생을 화가로써 살아왔지만 말년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정원이라고 했을 만큼 이 정원을 애정했다. 실제로 실력이 좋은 정원사이기도 했다. 모네가 사랑한 정원과 그의 유일한 뮤즈 카미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모네의 정원을 감상했다.

과연 모네의 눈으로 본 정원은 어땠을까? 저 시대에 사진기가 있었더라면 모네가 받은 강한 인상을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싶다.


금세 또 뻗어서 도착한 옹플뢰르.

노르망디는 비가 자주 내려 포도가 자라기 어려운 기후이기 때문에 와인대신 사과주가 유명하다. 옹플뢰르에서는 사과주(시드흐, 칼바도스)를 시음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술 냄새도 못 맡을 것 같아서 잠깐 밖에 나가 있었다. 전날 먹었던 우유잼을 팔기에 잔뜩 샀다. 이건 정말 맛있다.

옹플뢰르는 작곡가 에릭사티의 고향이기도 하다. 에릭사티는 그의 영원한 뮤즈 '수잔 발라동'을 사랑했는데 모네와는 달리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죽기 전까지 그녀만 그리워했다고 한다. 에릭사티가 죽은 후 그의 방에는 검은색 벨벳 정장과 80여 장의 똑같은 손수건, 수십 개의 검은 우산, 한 장의 사진 그리고 27년 동안 수잔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한 묶음이 있었다. 또한 벽에는 두 점의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수잔이 그린 사티와 사티가 그린 수잔이 나란히 죽은 그의 방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편안하게 들었던 '짐노페티'를 계속 듣다 보면 느껴지는 이질감과 차오르는 비통한 슬픔의 이유를 알 것 만 같았다. 실제로 이 평온한 곡을 에릭사티는 '느리고 비통하게' 연주하라고 했다고 한다.

프랑스는 마을마다 꽃점수를 매긴다. 옹플뢰르는 4점 만점에 4점을 받은 아주 아름다운 마을이다. 속이 안 좋아 점심을 건너뛰었기에 마을 곳곳을 누비며 구경할 수 있었다.


한숨 또 푹 자니 몽셸미셀에 도착했다.

디즈니와 해리포터 수많은 동화와 신화의 오마주가 될만한 비주얼인 이곳은 수도원이다. 꿈에 나타난 대천사 미카엘의 명을 받아 주교 오베르가 짓기 시작한 이 멋진 수도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누가 노르망디의 날씨가 안 좋다 했는가! 중간중간 아주 약간의 소나기는 내렸지만 푸른 하늘과 양 떼처럼 피어로는 구름 아래의 몽셸미셀은 정말 장관이었다. 갯벌 한가운데 놓인 몽생미셸은 순교자들의 믿음. 고행. 천국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게 해 준다. 과거엔 이곳에 오기 위해서 엄청나게 빠른 조수간만의 차를 이겨내고 목숨을 걸고 와야 했다고 한다. 결국 구원을 향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마을을 형성하게 하였다. 천사의 명을 받아 수도원을 짓기 시작한 신부님은 상상이나 했을까? 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 수도원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어 한 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불러들이게 되리라는 것을?

프랑스 마을의 특징. 해가 뜨는 동쪽에는 빵집이 있다. 빵을 굽는 행위는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서쪽엔 묘지가 있다.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교회가 있는데 이 아름다운 몽셸미쉘도 마찬가지이다.

6시를 알리는 수도원의 종소리를 들으며 식당으로 천천히 걸었다. 넓은 초원과 뻘을 바라보며. 이제 겨우 술이 조금 깨는듯한 느낌이었다.


힘든 일정의 끝. 프랑스의 고속도로엔 가로등이 없다. 도로는 공사 중. 꼬불꼬불 미로 같은 파리의 도로 위 택시운전사보다 이제는 운전을 더 잘하게 된 완희형. 이날 운전도 하고 가이드도 하고. 대단하단 생각을 많이 했다. 가이드할 때도 연극수업할 때처럼 온몸으로 설명한다. (한 번은 신나서 옆돌기도 했다고.)

몽생미셸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사람이 있다? 시선이 쏠리는 곳이 있다? 그럼 그곳엔 장완희가 있을 것이다.


새벽 2시. 차에서 한참을 잤지만 집에 오니 또 피곤하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루브르 투어 예약해 놨어."

"네?"

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전 02화 장완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