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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군 Sep 24. 2023

장완희


내가 아는 프랑스 사람 중에는 장 씨가 많다. 장르노, 장 바티스트 그루느이, 장발장, 그리고 장완희


나보다 10살이 많은 완희형은 좋은 배우이고, 좋은 액팅 코치이고, 좋은 연극 선생님이다. 또 순수함을 잃지 않은 어른이다. 작년에 한국서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프랑스에 있는 연극학교 자끄르꼭(Jacques Lecoq)에 입학했다.

힘든 1년 과정을 마치고, 50%만이 합격한 2학년이 되었지만 계속 그만둘까를 고려한다.(어차피 할 거면서)

돌싱글즈 보는 것을 좋아하고 돌싱글즈 출연도 할뻔했다.

공항에서 처음 봤을 때 차이니즈갱스터인 줄 알았다. 공부하다 열받아서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한다.

악명 높은 프랑스에서 누가 시비를 건 적도 인종차별을 한 적도, 심지어 지갑을 거의 빼놓고 다니던데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없다고 한다.

완희형은 절벽에서 자주 떨어지기는 하는데 죽지는 않는 사주라 한다. 실예로 이 말을 하자마자 결혼식장에서 갈비탕이 담긴 뚝배기 바닥이 빠져 갈비탕이 바지에 쏟아졌지만 다치지 않은 이야기는 우리 극단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완희형의 기행은 프랑스에서도 유효하다. 한국에 가지고 있던 부동산에 문제가 생겨 가지고 있던 유학비를 홀라당 날려버렸는데 우연히 프랑스에서 가이드 일을 제안받아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파리에 있는 학교가 아비뇽(한국으로 치면 밀양쯤)으로 이사를 간다.

잠깐 옆에서 지켜보니 한국에서 만큼 프랑스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다.

프랑스가 첫 외국이고, 그게 바로 유학이다.


완희형을 공항에서 만나고 형네 집까지 가는 길. 비 오는 날씨도, 연착되는 지하철 때문에 자전거로도 1시간 거리를 2시간 넘게 걸려 왔지만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완희형을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프랑스 단어로는 르트루바유(retrouvailles) : 서로를 다시 찾는 일.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났을 때 느끼는 기쁨.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좋아하는 장소로 되돌아오는 일도 포함한다.


많은 단어들을 섭렵하고 싶다.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엄청난 경험이고, 체험이다. 윤슬이라는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들었기에 나는 물 위에 비친 반짝임을, 찰랑거림을 느낄 수가 있다. 많은 행동동사를 섭렵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하는데 나는 많은 단어를 얻는 인간이 되고 싶다.


파리 가서 뭐 할 거야?라고 물으면 장난처럼 ‘쉬지 않고 술 마실 거야’라고 대답을 했다.

완희형네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우리는 반가와서 잠깐의 포옹을 한 뒤 맥주를 마셨다. 완희형이 날 위해 준비한 수많은 와인, 노르망디에서 형이 공수해 온 칼바도스(calvados)와 시드르(cidre)를 빠른 시간에 부어 넣었고, 우유잼, 황태포, 삼겹살, 라면, 치즈를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여기가 수지인지 파리인지 헷갈렸고 결국 난 곧 뻗었다.

얼마나 잤을까 형이 쌀국수를 먹으러 가자며 날 깨웠는데 누가 내 뇌를 철판에 넣고 볶아낸 것 마냥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몇 년 만에 느끼는 숙취였다. 광저우에서 경유하는 동안 중국식당에서 백주를 마셨다. 점원이 디스이스 베리 핫 이라며 정말 이 술을 마실 거냐고 세 번이나 물었고, 홀짝홀짝 잘 마시는 날 계속 신기하게 쳐다봤다. 근데 내가 숙취를 느끼다니. 신나서 때려 붓기는 했나 보다.

어떤 경험은 너무 강렬해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형을 만나 술을 마신 그 순간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삭제된듯한 느낌이었다.(필름이 끊겼다는 뜻)

쌀국수 먹으러 못 가겠다고 했지만 형은 기어이 날 끌고 택시를 탔다. 이선균선배님이 영화제 땜 프랑스를 왔고, 잠깐 파리에서 완희형을 만났을 때 이 쌀국수를 먹었는데 자신이 프랑스에서 먹은 음식 중에 이 쌀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했었다는데 난 그 쌀국수를 한입도 먹지 못했다. 먹으면 바로 토해낼 것 같아서.

완희형한테 넘 미안했다. 한국에 있을 때 우리 와인 각자 두병씩 마셔도 거뜬했는데 말이죠.


파리의 1존에서의 첫 경험은 술에 절여졌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같이 보기로 한 에펠의 야경도 보지 못한 채 결국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난 씻지도 못한 채 뻗었고, 짐도 못 풀고 프랑스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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