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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군 Sep 30. 2023

파리, 사랑


귀국 한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지만 밤에 잠을 못 자고 있다. 시차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파리에 있을 때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들어오는 바람은 부드럽게 내 피부를 간지럽혔고,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공기는 담백했다. 자기 전 와인을 한잔 마시며 나눈 대화는 즐거웠고, 형이 준비해 놓은 바삭 거리는 새 이불과 푹신한 침대는 눕자마자 날 기절시켰다.


일어나니 완희형이 갈비찜을 해놨다. 사실 나가서 바게트를 먹고 싶었는데 갈비찜이 너무 맛있었다.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지난달 극단 연출님이 아비뇽 연극축제에 놀러 왔고 완희형과 식사를 했다. 당연히 한식을 사달라 할 줄 알았는데 프랑스 음식점에 갔다고 한다. 근 2년을 파리에 있었는데 형은 한국에서 처럼 집에서 세끼를 거의 다 해 먹고, 김치도 직접 담그며 심지어 씨앗을 심어 키워 요리를 하기도 한다. 형에게 프랑스 음식 요리 책을 선물해 줬다.


다행히 형의 불어 과외 때문에 루브루 투어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파리에 온 지 사흘 만에 짐 정리를 살짝 하고 루브르 앞의 카페테라스에서 여유 있게 커피 한잔을 마셨다. 여유 있게 센강을 보며 마시는 커피. 이 평안과 여유는 루브르라는 거대하고 웅장한 존재를 맞닥뜨리기 전 잠깐의 쉼이었을까? 루브르는 엄청났다. 총 관람길이만 해도 60km라는 이 괴물 같은 박물관은 모든 방이 새롭고 신기하다. 모든 작품, 모든 방이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고 기가 쭉쭉 빨렸다. 처음 압도당했던 니케의 조각상. 신기하게 그 후에는 예술의 성지에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품들이 조금씩 무뎌졌다. 지금 사진으로 보면 다시 감동스럽고 놀랍지만 그 안에 있을 땐 살짝 멍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다행히 가이드님이 재미있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셔서 정신줄을 붙잡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이다. 에로스의 볼록한 엉덩이도, 만지면 꼭 미끌어 질것만 같은 흰 대리석의 질감도, 그리고 그 둘의 사랑이야기도 귀엽고 감동적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다.

다양한 예술작품을 루브르라는 거대한 궁전이 집어삼켰다. 하지만 루브르 자체도 예술이다. 파리라는 도시는 모든 건물, 거리가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이다. 왜 예술가들이 파리를 그렇게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았다.


허기저 밥 먹고 니콜라에서 와인을 한병 사 들고 올라간 몽마르뜨. 와인과 함께 즐긴 프랑스의 야경.

'지구 반대편 파리의 몽마르뜨에서 와인을 마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우리 인생은 생각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네요. 그냥 그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면 이런 기적 같은 시간도 찾아오는 것 아닐까요?'

적당히 와인을 마시니 기분도 좋아지고, 날씨도 너무 좋았고, 시간도 늦지 않아 우리는 에펠을 보러 갔다.


매 정각마다 에펠은 5분 정도 깜빡인다. 그리고 그 깜박임이 시작될 때 사람들은 작은 감동의 탄성을 낸다.

트로카데로의 잡상인들이 파는 반짝이는 작은 에펠들은 마치 현대 미술관에 들어온 것처럼 곳곳에서 아름답게 반짝거렸고, 그 가운데 모든 연인들은 키스를 하고, 포옹을 했다. 피아노를 치며 버스킹을 하는 아티스트 주위에는 군중들이 모여 있었고, 다들 춤을 추고, 웃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황홀했고, 감동적이었고 갑자기 슬쩍 눈물이 차오를 뻔했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쁜 거리도, 거대한 미술관과 박물관도 있지만 그 분위기 안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웃음소리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와 모든 이들의 벅참 때문은 아닐까?



"자네가 아주 운이 좋아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지낼 수 있다면

남은 평생 어디를 가더라도 파리에서의 추억이

자네와 함께할 걸세.

파리란 이동축제일처럼

언제나 축제와도 같은 곳이니까 말이지."


-1950년 헤밍웨이가 한 친구에게 보낸 글 중에서.



그날밤엔 황홀한 보랏빛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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