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이별 - 폴린 보스

by Chloe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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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진다. 만남의 깊이에 따라 헤어짐의 자국도 제각각이다. 학창 시절 50명이 넘는 친구들이 한 반에서 공부했지만 지금 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극소수다.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이름도 생각 안 나는,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같은 반이었던 것도 생각 안 날 깊이의 만남에는 상처가 없다. 이런 헤어짐의 자국은 남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많은 만남이 아무런 상처 없이 스쳐 지나간다.


어린 시절에도 가벼운 만남과 헤어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를 백혈병으로 잃었다. 그때 상실의 충격은 이후 친구관계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마음 속내까지 깊숙이 들어왔던 친구는 깊은 상처의 자국을 남기고 갔다.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 가끔씩 불러보는 이름과 아련함의 모습으로 혼자 있는 시간에 찾아온다. 나이 들어버린 내 모습과 달리 교복을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진갈색 풍성한 머리칼을 늘 하나로 묶고 다니던 그 아이를 손소독이 뭔지도 몰랐던 1999년 그때 손과 옷에 알코올을 잔뜩 뿌리고 마지막으로 만났다.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에 헐렁해진 옷, 가슴에 달고 있던 빨강 파랑 생명줄과도 같던 관을 봤다. 손 흔들며 다음 약속을 잡았지만 그곳에 있던 모두가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도 선명한 이별이었다. 모두 함께 한없이 울고, 마지막을 보내고, 다음생이라고 말해보고 그리워할 수 있었다.


인간의 경험에는 헤어짐이 중심에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상실을 경험하며 성장해 간다. 만남은 우연과 선택이지만 헤어짐은 늘 필연이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기도, 선택하기도 한다.


일상은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무엇하나 명확한 게 없다. 모호함은 행복하고 좋은 일부터 힘들고 아픈 일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할 그날을 그려보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트여 "엄마"하고 부르는 상상을 했다. 실상은 달랐다. 어느 날 아이는 입을 오므리더니 "ㅁ~마"라고 자신도 모르게, 의도치 않게 소리를 냈다. 긴가민가 했다. '엄마라고 한 건가?' 그리고 이런 입의 오물거림은 점점 "엄마"란 소리로 만들어갔다. 우리 곁에 있는 이런 사소한 일도 시작은 모호함이었다. 모호함으로 둘러싸인 인생에서 결과만 남아 있을때는 인생이 명확해 보인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호함은 늘 곁에 있지만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성장해 가는 존재라면 그 성장은 경험에서 온다. 일생에 가장 대표적인 경험은 헤어짐과 모호함이고 이 둘이 합쳐진다 해도 이상할게 하나 없다. 아무도 명명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호한 이별을 경험하며 지금 자신으로 서있다. 가장 강한 모호한 경험은 사랑하는 가족의 실종이나 입양, 이민, 이혼 등의 원인으로 생긴다. 이런 상황은 모두가 겪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치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훨씬 더 가깝게 있다. 현재 내가 겪고 있거나, 곧 겪을 모호한 이별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자녀의 독립이다. 엄마 껌딱지였던 아이는 자라서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이제는 오랜 시간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궁금해하지 않고,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이러다 곧 독립할 시기가 온다. 엄마들이 느끼는 빈 둥지 증후군은 결국 모호한 상실에서 오는 감당할 수 없는 역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긴다. 나 또한 10년 안에 성인이 되는 자녀가 있다. 쉽지 않겠지만 담담하게 축복하며 그날을 맞길 미래의 나에게 바란다.


또 하나는 부모의 완전한 상실 전에 생길 정신적 혹은 비정신적 질병으로 인한 모호한 상실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면 보통 질병이 깊어지면 우리가 생각하는 부모님으로의 기대 역할을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존재적인 안도감 외에 심리적으로도 기댈 수 없는 때를 맞이한다. 이 또한 부모님의 존재는 맞지만 이전에 내가 알던 부모가 아니고 따라서 모호한 상실감을 느낀다. 이런 상실은 좋아짐 없이 끝으로 갈수록 나머지 가족 모두에게 상실감으로 큰 고통을 준다.


모호한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관계의 재정립이다. 사람도 변하고 상황도 바뀐다. 상황이 바뀌면 사회 속에서 우리의 역할이 변화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모호한 상실, 그 과정에서 상황이 바뀌어 가족 안에 역할 재분배가 필요한 시기를 만난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있다고 치자. 아버지는 있지만 아버지 역할 을 하는 사람은 없어진다. 아버지가 했던 가족 안의 중요한 일들을 더 이상 할 수 없어지는 시기가 온다. 가족이 온전한 모습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이 역할을 다시 나눠 가정의 기능적 정상화를 찾아야 한다.


외국 사례를 보며 감동했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을 때 가족을 잘 인지하지 못할 만큼 역할로서의 어머니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때 가족들끼리 역할적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보호를 받는 다른 역할로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주기적인 대화는 필수다.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서 어머니를 다른 역할로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나눠 가진다면 어머니의 질병은 가정의 고통이 아니라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주어진다.


책은 생각을 던져주고 글은 생각을 깊어지게 한다. 이 책이 준 기회로 나중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역할을 상실했을 때 그를 위한 마지막 사랑의 실천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씨앗이 마음에 심어졌다.



== 요약 ==

인간의 핵심 경험은 모호함과 상실이다.

가족간의 대화로 역할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책소개 : https://blog.naver.com/chloej41/223354318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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