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지하철에서 5분 거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도시의 회색빛, 인간이 쌓아 올린 경이로울 만큼 높은 아파트를 좋아한다. 5분 거리에 대형 종합병원이 있고 아파트 상가에 편의점, 음식점, 약국... 10분만 나가면 우체국, 은행, 대형쇼핑몰 없는 게 없다. 직장이 아니었다면 자가용이 필요 없을 그런 곳.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나는 좋다.
난 시골 출신이다. 아직도 내 고향에는 오일장이 열린다. 지금도 강아지를 봉투에 담아서 사 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고향에서 시내 길을 엄마와 걸으면 5분이 멀다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난다. 작은 상점들도 모두 아는 집이었다. 그 동네는 도무지가 비밀이 없다. 집 떠나 좋았던 게 바로 익명성이었다. 나쁜 짓을 할 건 아니지만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해서 좋았다. 혼자서 뭘 하든 아무도 날 모르고,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는 이런 쿨함이 도시적이고 세련돼 보였다.
원래 그리 사교적이지 않고 성향상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로 거처가 이동하면서부터 이사할 때마다 주변의 카페 탐색은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혼자 일수 있는 시간, 일주일에 한두 번, 간편한 차림으로 책 한 권 들고, 한두 시간 있을 수 있는 장소가 행복이었다. 지금까지 선택은 늘 대형 카페였다. 브랜드 카페보다는 층고가 높고, 넓고, 책상이 편한 카페가 좋다.
집에서 1분 거리에 대형카페가 있었다. 이름이 '휴가'였다. 휴가는 정말 집보다 좋아하던 곳이었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과 대화를 나눠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이 구분되어 있어서 일주일에 3번씩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자주 갔으나 직원들과 눈인사만 할 뿐 여전히 그곳에서 나는 모르는 사람들 속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런 내 아지트가 없어졌다. 확장이전으로 한순간 마음이 쉴 곳이 사라졌다.
대신할 곳을 찾으러 지도에 표시된 카페를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들렀다. 예닐곱 곳을 가본 후 한 곳에 정착했다. 주변이 모두 번화가였지만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골목에 있었고 지금까지의 선호와는 달리 테이블이 6개뿐인 작은 카페였다. 첫눈에 좋아하는 곳은 아니었다. 커피가 맛있어서 몇 번가다 보니 단골이 되었다. 사장님이 직접 고른 원두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어떤 커피인지 설명이 적힌 작은 카드를 함께 제공했다. 바닐라 라떼에는 크림이 올라갔고 직접 갈아 넣은 바닐라빈이 콕콕 박혀있었다. 그 카페에서만 마실 수 있는 시그니처는 적어도 내겐 완전히 '호'였다.
한두 번 가다 보니 당연히 가는 '휴가'같은 카페가 되었다. 짬 만나면 가는 내 안전지대. 카페에 오는 모두에게 제공되는 한입약과, 트레이, 물티슈가 내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사장님과 어느새 안다고 할만한 사이가 되었다. 사장님이 아는 나는 이렇다. 건강을 위해서 적어도 혼자일 때는 간식은 잘 안 먹고, 책을 읽어야 해서 테이블이 늘 복잡하다. 트레이 놓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 환경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불편은 감수하기에 물티슈를 쓰지 않는다. 그걸 유일하게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눈시울이 붉은 채 방문을 해도, 기쁨에 찬 얼굴로 커피를 시켜도 친절하게 배려하고 자리만 내준다. 사장님과 카페 전체가 주는 안정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어릴 적 부담스러워했던 것은 관심과 배려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도시에 만연한 무관심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가까운 사이라고 느껴지면 거리 없이 훅 들어오는 부담에 차라리 무관심을 택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함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관계도 오지랖과 무관심의 극단을 오가기 십상이다. 소외된 사람에 무관심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읽고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