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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Oct 03. 2024

디스크와 영혼

뭐가 문제였는지 알 수는 없다. 여러 일상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집안 책장 정리를 하면서 책을 혼자 재활용쓰레기장에 옮겼다. 바로 전날은 운동을 한 날이기도 했다. 무거운 중량의 데드리프트도 운동 중에 있었다. 저녁에 허리가 찌뿌둥했다. 시원해지는 느낌을 위해 허리를 비트는 방법으로 스트레칭도 했다. 다른 날들과 다름없이 집안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느낌으로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개운하지 않은 컨디션으로 모닝루틴을 했지만 별 특이사항은 없었다. 출근길 운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일이 시작되고 한 시간 간격으로 급격하게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아팠으나 일을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진통주사를 맞고 일을 마무리했다.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정형외과에 들렀다가 흔히 디스크라고 이야기하는 허리 추간판탈출증을 진단받았다. 우선 물리치료와 진통제로 치료를 시작했다.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면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주말까지도 일정이 가득이었다. 


처음 마음은 이랬다. 

'얼른 주사 맞고, 안되면 척추에 진통제 주입하고 나면 계획된 일정을 착오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거야!'


3일간의 치열했던 통증은 결국 척추에 직접 진통제를 주입하면서 호전되었다. 복대가 필요하긴 했지만 이제 책상에 앉아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무너졌다. 우선 세상은 나 없이도 너무 잘 돌아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제쳐두고 내달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에 내 부재는 없었다. 나 만두고 모두가 움직이고 있었다. 열정적인 타인의 활동을 멍하니 보고 있어야만 한다는 자체가 괴로웠다. 


문득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었으나 그냥 이 세상의 기본값, 이상적인 법칙을 따르며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내가 없고, 내가 가고 있는 꿈을 위한 길에 내 진짜 바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 조차도 내가 없었다. 책도 내가 원하는 건지 세상이 인정했기 때문에 겨우 따라가기 위해서 꾸역꾸역 읽고 있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멈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생각과 달리 모든 게 멈춰버렸다. 형광등이 곧 꺼질 듯 깜빡이는 느낌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모임을 정리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다행히 끝난 모임도 있었고, 방금 시작한 모임도 있었다. 미안하고, 이어서 하고 싶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불안하기까지 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만두는 것뿐이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멈췄다.


며칠 전에 읽었던 올가 토카르추크의 '잃어버린 영혼'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할 일과 일정 그 표면 속에 허둥거리게 짜여있는 세상에서 나 아닌 누군가의 기대와 열정값에 움직이다 보니 영혼은 길을 잃었다. 도저히 몸의 속도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은 영혼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몸이 망가져라 달리던 달리기를 멈추고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시호였다. 이제 다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도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조금씩 더 깊이 가라앉고 있다. 


아직도 머리는 힘을 쥐어짜 내며 뭐든 하라고 재촉한다. 지금까지 머리의 욕심대로 따르다 보니 영혼을 잃었다. 아마도 소녀의 모습을 한 내 영혼은 천천히 세상을 구경하고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다. 결국 이리로 오고 있지만 지친 마음 풀릴 때까지 망설임 섞임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받아줄 생각은 없나 보다. 공백은 바닥만 보고 달리던 내게 다시 한번 방향을 잡을 기회를 준다.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 뿐이다. 


다시 만나게 될 영혼에게 물어볼 질문들을 적어본다. 

"해야 할 일 말고, 오늘 진심으로 날 위해한 일은 뭐였니?" 

"속상한 일은, 힘들일은 없었니?" 

"내일은 뭘 하고 싶니?"


살다 보면 또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게 될지 모른다. 그게 빨라 보이나 실상 영혼을 잃어버리고 회복하는 시간과 노력까지 생각하면 손해다. 세상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만 보고 달리다 보면 내 꿈인지 타인의 꿈인지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힘들게까지 도달한 목표가 내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가장 정직한 내 안의 영혼, 어린 나를 마음 한켠에 두고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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