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1번째 글을 마치면서, 오늘부터 다시 천국의 계단을 시작할 마음을 먹어본다. 비움과 채움의 균형 속에서 나는 조금 더 강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통 없이는 성장도 치유도 없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전에 비우는 법을 먼저 익히고, 채움과 비움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다듬어갈 것이다.
책을 쓰기 시작한 지 7주가 되었다. 대략 49일 동안 오직 친정에 다녀온 하루만 글을 쓰지 않았다. 글쓰기는 분명 나에게 치유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고통이기도 하다. 치유는 고통을 통과한 뒤에야 찾아온다. 이는 순전히 정신노동이다. 이런 책을 쓰는 고통은 나에게 단지 작은 부분일 뿐이다.
나는 직장 생활도 병행하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일도 늘어가고, 건강검진 분야 특성상 상담이 많아지며 감정 노동도 심해지고 있다. 감정 노동 또한 정신적 고통이다. 하루 종일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진다. 아무리 프로페셔널한 자세를 유지하려 해도, 상담이 끝난 후 남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이다. 매일 이 감정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지치곤 한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공부 커뮤니티에서 멘토로도 활동 중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고통 없이는 성장이 없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학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아니기에, 공부 자체를 즐기지는 않는다. 커뮤니티 모임도 준비가 필요하고, 이후에는 정리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기록하는 노션 페이지에 이번 달 성과가 누적되어 있다. 쓴 글의 수, 작성한 마인드맵, 참석한 모임 횟수, 읽은 책 권수, 다녀온 전시회 수 등. 오늘이 24일째 되는 날이니, 어제까지 나는 23일 동안 2000자 이상의 글을 40편 썼고, 10번의 모임에 참석했으며, 7권의 책을 읽고, 2번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 때문에 마인드맵은 5장밖에 만들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압박감에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몰려온다. 충분히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 질책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최근 한 달 동안 나는 진정한 쉼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친정에 다녀올 때 기차에서 읽은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가 그나마 이번 달의 유일한 쉼이었다. 그러나 문득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병원에서 상담을 하면서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야기들이 텍스트로 해석되고 있었다. 한때는 쉽게 공감하고 울 수 있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감정이 들어설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쉼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신을 쉬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하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와, 머릿속에서 울리는 게으름의 달콤한 유혹을 이유로 운동을 미뤘다. 게다가 요즘 비흡연자의 폐암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뉴스를 접했다. 아직 연구 결과는 명확하지 않지만,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운동하는 것이 폐암 발생의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이 있었다. 안 그래도 안 하던 운동을 미룰 핑계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일주일에 3번씩 계단 운동을 했다. 헬스장에서 계단 운동은 내게 최고의 정신적 해방이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20분 만에 비처럼 쏟아지는 땀과 숨이 턱까지 차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운동의 이름은 ‘천국의 계단’이다.
천국의 계단에서는 생각이 비워진다. 15분 정도 쉼 없이 오르면 아파트 70층에 해당하는 높이에 도달한다. 그때부터는 다리가 자동으로 움직이고, 헬스장에서 나오는 음악조차 들리지 않는다. 머릿속은 마치 이사 나간 집처럼 텅 비어 고요해진다. 그 고요 속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비워지고 나서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이미 가득 찬 방에 억지로 무언가를 더 넣으려고 하면, 질서만 흐트러질 뿐이다.
운동을 마친 직후에는 피로가 몰려온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도 산뜻해진다. 머리와 마음에 다시 불이 켜진다. 그때 독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면, 몰입도는 200%에 이른다. 천국의 계단에서 나는 정신적 공백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내 안에 남아 있던 과부하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뒤 비로소 내 안에 새로운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 고통을 경험한 뒤에 오는 치유, 그 치유 속에서 자기 성찰과 성장이 찾아온다.
이제 41번째 글을 마치면서, 오늘부터 다시 천국의 계단을 시작할 마음을 먹어본다. 비움과 채움의 균형 속에서 나는 조금 더 강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통 없이는 성장도 치유도 없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전에 비우는 법을 먼저 익히고, 채움과 비움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다듬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