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J Nov 07. 2024

갈 길이 태산

차분하게 시작했지만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 말속에서 조차 통제되지 않은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았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한 달이 넘게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를 안 보는 건지 휴대폰만 붙들고 있는 딸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학교에서 모둠 영화 만들기 과제가 주어졌고, 딸은 한 달 넘게 그것에만 매달리고 있다. 아이디어를 모으고, 구상하고, 콘티를 짤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내가 언제 영화를 만들어 봤어야 알지...


영상 촬영과 오프닝 음악을 만들면서부터 내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오프닝 음악을 정하고, 여러 악기와 코러스를 겹쳐 녹음하고, 노래는 부르지 않더라도 영화를 소개하고, 등장인물을 알리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장면을 만들어야 했다. 음악과 영상을 편집하고 자막을 넣으며, 1분도 안 되는 오프닝을 위해 수십 시간이 들었다. 문제는 이 모든 걸 딸 혼자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프닝 작업에만 일주일이 걸렸고, 영화를 찍는 내내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직도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아이는 평일에는 2시간, 주말에는 10시간씩 붙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계속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 6명이 함께하는 프로젝트인데, 다른 친구들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딸이 모든 걸 떠맡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자니, 나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름 사회적 가치에서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2학년 이후로는 영어학원을 끊었고, 3학년부터는 문제집도 끊었다. 영어는 엄마표로 가르치고 나머지는 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5학년이 되니 자기 주도적 학습 환경이 자리 잡힌 듯 보였다. 6학년, 사춘기가 모든 계획을 뒤흔들었다. 할 일이라고는 아침에 한 시간, 오후에 30분 엄마표 영어뿐인데, 11월 체크리스트에는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한 번의 체크도 없었다. 이런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던 다음날 출근하며 넌지시 웃으면서 말했다.  "영어 좀 해야 하지 않겠니?" 그 말은 사실 경고였다. 아니, 덫을 놓은 것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물었다.

"소정아, 영어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야?"

"어제."

"어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제."

"11월 되고 나서는 안 한 것 같은데..."

"어, 미안..."


거짓말과 '미안'이라는 말에 차분하게 시작했지만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 말속에서 조차 통제되지 않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게 엄마한테 미안할 일이야? 네 인생이야. 중요한 일은 원래 급하지 않아. 급한 일만 하며 살다 보면... 그걸 왜 혼자 다 떠맡아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문득 까만 창문에 비친 내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아, 사납고 무섭다.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무서운 표정으로, 이 세상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날카로운 말투로 딸을 공격하고 있었다. 평소에 허용적이고 이해심 많은 엄마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한 달 동안 기다린 나는 사실 기다린 게 아니었다. 딸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걸 잡아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놓고 노린 것이었다. 집이라는 안전지대에서 엄마가 놓은 덫에 걸린 딸은 작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리저리 엄마가 원하는 답을 찾고 있었다. 다시 웃기고 다정한 엄마로 되돌리기 위해 애쓰며...


폭풍이 지나간 후, 딸을 향해 공격하던 내 내면의 목소리는 방향을 돌려 나를 겨눴다. 아, 폭발과 자책의 악순환. 알고 있었으면서도 잠시의 충동을 넘기지 못해 또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는 상처받은 마음의 무게를 느꼈다. 폭발적인 감정 뒤에 남은 것은 딸의 작은 눈빛과 스스로에 대한 깊은 자책이었다. 이 감정을 외면하지는 않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은 부모로서의 나도,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 나 안아줄 수 있어?"


얼마나 듣고 싶고 기다렸던 말인지 모른다. 오랜만의 폭발이었다. 사춘기가 되고는 처음이었다. 이제는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지기까지 했었다. 엄마 나이 13살. 사춘기 딸을 키우는 것도 처음이라 여전히 많이 배워야 한다. 딸은 이렇게도 엄마를 빨리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데, 나는 그것 하나 먼저하지 못하는 옹졸함에 스스로 실망스러웠다.


또 사과를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딸이 잘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나 내가 다시는 폭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나, 참, 어른이 나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겠지 생각해 본다. 이렇게 또 엄마 나이가 들고,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딸을 안아주며 말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그 순간, 딸의 손이 가만가만 올려오더니 내 귓불을 만졌다. 아기 때부터 갖고 있던 습관이었다. 나는 그 손길에 조용한 위로와 미안함을 느꼈다. 딸을 꼭 안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과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은 관계만 악화시킬 뿐이다.' 그리고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으로 아이와 함께 성장하면 된다고 혼자 위로해 본다. 딸의 가는 몸이 내 품에 안길 때 느꼈던 따뜻함은 마치 나에게 용서와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아이가 처음이고, 딸에게도 사춘기가 처음이다. 우리는 둘 다 서툴지만, 그 서툶 속에서 더 단단한 사랑을 쌓아가고 있다.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