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는 4년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이웃과 안면을 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2~4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해서 곧 안 볼 사람이었다. 이번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만큼이나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우리도 워낙 조용하게 사는 가족이라 앞으로도 쭉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옆집에는 4년 동안 2번 정도밖에 보지 못한 일찍 출근하는 아빠와 주중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엄마, 기숙사에 사는지 주말에만 이따금 보이는 딸이 살고 있었다. 3년이 넘도록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할 만큼 아주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마주치고도 모르다가 같이 내려서야 옆집 사람이구나! 했다. 그러다 보니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쪽도 그런지, 아니면 일부러 인사를 안 하는지 인사가 없었다. 가끔 둘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내려야 할 층이 이미 눌려있을 때 인사를 했더니 돌아오는 인사 없이 어색함만 가득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인사를 하고 아는 사이로 지내고 싶지 않은가 보다 했다. 사실, 속으로는 엄청 욕했다. 적어도 인사를 받아주기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이후로 비슷하게 지냈다. 어쩔 수 없을 상황에서는 내가 어색해서 인사했고 인사를 해도 받아줬다 안 받았다 하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나도 마음을 닫았다. 그녀의 한껏 차려입은 복장과 대조적으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는 내 모습이 우스워 보이나 보다.. 생각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또 옆집 여자를 만났다. 골프가방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분주히 뭔가를 하는 그녀를 보느라 나도 인사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내려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나도 그녀도 어색하니 얼른 들어가 버렸다. 집 앞에 택배가 와있었다. 집에 들어와 재활용하기 편리하도록 테이프와 택배송장을 깔끔하게 떼서 버리고 물건을 확인했다. 방향제였다. OMG 내가 시킨 물건이 아니었다. 택배를 워낙 자주 시켰고 우리 집 앞에 있었으니 한 번의 의심 없이 당연히 내 거라고 생각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한 뒤였다.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송장을 확인했더니 옆집 물건이었다. 이미 손대버린 택배라서 물건만 문 앞에 밀어놓을 수가 없었다.
"띵동", "안녕하세요. 옆집이에요."
"잠시만요."
상황을 설명하고 다 떼버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물건을 내밀었다. 평소 이미지가 좋지 않던 터라 쉽게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예상외로 사용할 거라 괜찮다고 웃으며 받아줬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이다 비닐봉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참외였다.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평소 인사를 하고 싶은데 자꾸 놓쳐서 마음이 불편했다고 했다. 우리 딸이 인사를 했는데 못 알아봐서 자꾸만 인사를 못 받아줘서 미안하다고 내게 말했다. 이해한다고 앞으로 인사하고 지내기로 하고 헤어졌다. 사실 나도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서 곤란한 상황이 종종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될 상황이었다.
몇 주가 지났다. 주말 아침에 해장국을 먹으러 7시부터 집 근처로 출동했다. 그 시간에 밖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사거리 큰길을 건너는데 어떤 여자분이 인사를 했고 누군지 모르고 나도 인사를 했다. 내 어색한 인사가 누군지 기억 못 하는 게 많이 티가 났나 보다. "옆집이요!"
수다거리가 생겼다. 내가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 저번에 인사해 줘서 고맙다. 진짜 반가웠다. 앞으로 서로 옆집이라고 알려주자. ㅎㅎㅎㅎ.... 우리는 반가운 이웃이 되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느끼던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졌다. 인사를 안 받아주던 옆집여자라는 가면을 씌워놨지만 팔자 좋게 골프나 치러 다니는 부러움에 내 마음이 얼마나 옹졸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딱 한 발만 다가가니 이렇게 사는 게 편했다. 그동안 옆집 문소리가 나면 바쁜 아침에도 잠시 기다렸다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소심함이라고 해야 할지,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지... 그 의미 없는 것을 지키려고 아마도 많은 좋은 사람들을 놓치고 살아왔다. 먼저 말 걸기 싫어서, 한발 양보하기 싫어서, 내가 왜? 이런 마음이었다. 먼저 다가가면 지는 것 같기도, 손해인 듯 보였다. 하지만 얼마나 바보 같았던가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가 한발 물러난 공간에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 들어찼다. 함께 살아간다고는 하나 한발 양보하는 것도 잘 안 되는 세상을 살다 보니 마음이 좁아졌었다. 그녀의 배려 덕분에 큰 것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골프 좋아하냐고 말을 건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