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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Nov 25. 2024

어쩌면 하찮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살갗 아래를 읽고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것은 감각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세상의 인식이 단지 뇌의 작용으로만 여겨졌다. 얼, 정신, 영혼과 같은 마음의 영역에서 비롯되는 모든 생각, 느낌, 감정, 인식들은 우리의 뇌에서 나온다고 믿어왔다. 이는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오랜 기간 우리의 통념을 지배해 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 몸의 각 부분, 신체 장기 하나하나가 각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체는 정신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없어도 되는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장기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맹장, 자궁, 담낭을 들 수 있다. 이과 같은 장기들은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제거가 가능하다. 실제로 지금은 배에 작은 구멍 몇 개만 뚫어서 비교적 간단하게 수술을 할 수 있다.


내 맹장은 중학교 1학년 때 내 몸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반드시 필요한 수술은 아니었다. 배가 아팠고, 의도치 않게 금식이 되어있었다. 마침 수술이 가능했고, 맹장은 없어도 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수술을 하면 어차피 며칠 못 먹고 보통 배가 아픈 증상은 항생제를 쓰고 며칠 금식하면 이래나 저래나 낫는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내 맹장은 의료 폐기물이 되었다. 하지만,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


서른이 넘어 첫아이를 낳고 또 한 번 내 뱃속에 비워진 공간이 생길 뻔했다. 자연분만 중 시술 사고로 인해 자궁 탈출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치료로 자궁 적출 수술이 필요했다. 병원에서는 출산 계획이 없다면 자궁을 떼어내자고 당연하고 쉽게 말했다. 아직 젊고, 아이가 하나뿐인 나의 자궁을 지키고 싶었던 엄마는 의사의 말을 막아섰다. 엄마가 그렇게 극구 반대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 뱃살은 지금보다 조금 덜 나왔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렇게 반대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영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산부인과에서 자궁 적출 수술로 너무 많은 보험비가 청구되어 보험회사에서 조사를 나온 적이 있었다. 자궁을 적출하면 1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걸 노렸던 한 산부인과에서 하나 건너 하나는 있는 자궁근종이 있는 대부분의 자궁을 적출했다. "영주 아줌마들은 XX산부인과에서 다 자궁을 적출한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 병원의 의사는 나쁜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포괄수가제가 시행되기 전이었기에 양심을 팔아 부를 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그는 생명에 지장이 없고 건강을 크게 해친 건 아니고 게다가 보상금을 받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의사들은 왜 이렇게 환자의 몸속 장기를 하찮게 여기는 걸까? 누군가는 돈을 위해, 누군가는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만을 신뢰하는 실증주의 과학의 신봉자였을지도 모른다. '이 장기를 떼어낸다고 해서 해롭지 않다'는 결과가 없으니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있어도 없어도 되는 장기를 마음 놓고 떼어낸 것이다.


병원에서 매일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상황 속에서, 없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장기는 간단한 액세서리처럼 여겨지곤 한다. 수억 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몸의 일을 알기에는 아직 인류의 지식이 부족하다. 잘못된 판단으로 짧은 한 세대의 희생을 치렀던 사람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갑상선을 유지하고, 전두엽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 점을 생각하면 오싹할 따름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수술과 시술이 훗날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판명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은 일평생 꺼지지 않는 심장을 가지고, 닫히지 않는 귀를 가진다. 쉬지 않고 허파에 숨을 불어넣고, 피를 걸러 소변을 만드는 신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가 밝혀낸 과학이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를 지키는 것은 자연이 만들어낸 우리의 몸이다.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기적이며, 그 어떤 기계보다도 정교하고 지혜로운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 몸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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