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고
책장을 넘기며 몰입이 시작되었다. 글 속 세계는 현실보다도 선명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느꼈던 그 몰입처럼, 이번에도 책은 나를 완전히 빨아들였다. 읽는 동안에도, 책을 덮은 후에도 의식이 책으로 돌아가는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단박에 읽을 수 있을 몰입도였지만 그러기 힘들었다. 시간이 없고 바빠서가 아니었다. 너무 선명한 고통이 이따금 멈추게 만들었다. 책 속의 '나'는 아이티계 흑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소심하고 조용한 소녀였다. 그녀는 12살의 나이에 좋아하는 남학생과 모르는 그의 친구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타인으로부터 그녀의 몸은 무차별적 폭력으로 짓밟혔다. '더럽혀진 몸'이라는 문화적으로 강요받은 생각은 스스로를 더 어두운 곳으로 몰아갔다. 어렸던 그녀는 자신을 버렸다. 아무에게도 드러나 보이고 싶지 않아서 몸을 망쳤고, 망쳐진 몸은 누구에게나 전시되었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두꺼운 책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고통을 받았으나 치유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정도의 스토리를 예상했었다. 성폭행, 가출, 식이장애, 퀴어. 실눈을 뜨고 한 여성을 관찰하는 느낌이었고, 그런 조마조마함은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왜 그녀 곁에서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까? 마음이 아프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랜 시간 자신과 자신의 몸을 저주했을 그녀가 안타까워서이기도 하고 내 안에 있던 어둠이기도 했다. 비밀로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과거, 그녀는 이런 일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그 일은 단지 과거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현재는 산속 오두막에서부터 지금까지다. 살기 위해 쓰고 또 썼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기 고통을 해부했다. 그 고통은 그녀의 일부이며, 이 세상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이의 과거이자 현실이었다. 우리 사회가 성적으로 민감해진 것은 사실이나, 그 변화는 오래되지 않았다. 피해자는 덮어야 했고, 피해야 했다. 덮지 않고 피하지 못한 여성은 원인 제공자가 되었고, 피해자의 원인 제공으로 가해자는 이해받았다. "이제는 안 그렇지. 이젠 좀 나아졌잖아." 온전히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어딘가, 누군가는 고통받는다. 그게 내가 아니라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런 불편함을 드러내고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내 가족과 나는 잠재적 피해자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 책을 읽으며 낯선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는데 안다고 말할 수 없던 말이었다. 퀴어(성소수자), 부치(남성 역할), 알파, 베타, 시그마... 이전에 어딘가에서 읽으며 문맥상 유추를 했지만 내 일이 아니어서 관심의 부재로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없었던 개념들이었다. 이번에는 이런 단어들이 나의 이해를 넓히고, 세상을 조금 더 직시하게 만들었다. 내 일이 아니었던 것들을 내 일로 만들었다.
12살에 성폭행을 당하고 스스로를 몸이라는 감옥에 넣은 저자는 더 많은 시간을 비만이라는 사회가 만든 잣대에 괴롭힘 당했다. 사건이 일어난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둔 부모로서 이곳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한 번도 살 빼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늘 보고 듣는 것들이 기준이 되어 13살에 체중 관리를 하는 딸을 보면, 다이어트를 달고 살았던 내 과거가 떠오르며 마음이 씁쓸하다. 지금 그대로가 예쁘다고 말해도 나이까지 어려져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의 모습이 기준이 되어버렸으니 내 말은 그저 고슴도치의 한숨으로밖에 안 들린다. 딸은 10살까지 매우 통통했다. 친척들은 모두 사랑하고 걱정한다는 표정으로 10살 꼬마에게 한 마디씩 했다. 그중 최고는 이 말이었다. "얼굴은 고치면 되는데 뚱뚱하면 답이 없어."
BMI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비만의 기준은 미국과는 달리 25부터 과체중도 아니고 '비만'이다. 160cm에 25의 체질량지수는 64kg이다. 다른 나라의 기준은 30인데, 바꿔야 한다는 말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그대로 사용된다. 그러면서도 저체중에 대한 관대함은 미덕으로 여겨질 정도다. 160cm의 키에 적정 몸무게,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는 체중은 몇이라고들 생각할까? 미혼의 여성이라면 47kg 정도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그런 노래 가사도 있었으니...(가사에서는 160/45) 세계 저체중의 기준은 18.5이다. 그리고 18.5의 체질량지수를 가진 키 160cm 여성의 체중이 47이다. 저체중을 미덕으로 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체질량지수를 거칠게 설명하자면 "정상 체중을 유지해야 오래 산다"라고 할 수 있다. 비만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만큼이나 저체중도 마찬가지다. 이로써 알 수 있다. 젠더로 아직도 여성은 작고 가녀리길 기대받는다.
몸에 대한 생각을 하는 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몸이 함부로 상처 입혀지고, 쉽게 농담거리로 희화화되기도 한다. 이유 없이 혐오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젠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데 내 몫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병원이란 곳은 보통 사람들의 비밀스러움이 드러나는 곳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펴보는 곳이기에... 밖에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이곳 병원에서 어쩌면 가해자였다. 흉부 방사선 사진을 찍을 때 가운이 맞지 않아 남자 가운을 입었던 여성과 그것도 들어가지 않아 자기 티셔츠를 입어야 했던 특별한 눈길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한 달에 적어도 2~3명은 되었지만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그들을 위한 대처를 논의한 적이 없다. 부끄럽지만 더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해를 입히기도 했다. 준비된 모든 것은 보통의 규격을 위한 것이었고, 검사자로서 검사를 하면서 몇 번은 그들에게 들렸을 내 한숨에 이제야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낀다. 록산 게이 한 사람의 고백으로 내 생활의 옳지 않음을 가려냈다. 이렇게 알려지고 퍼져나간다면 보다 나은 사회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우선 나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