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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천국의 계단에서 배운 인생

타이탄의 도구들 - 키워드 : 시작

by Chloe J

모든 시작은 설렌다. 설렘 안에는 기대와 함께 불안과 두려움도 포함된다. 시시각각 우리는 삶 속에서 시작을 강요당한다. 아마 학창 시절까지 대부분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라기 보다가는 생애 주기상 해야 할 시작들의 나열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스스로 선택한 시작을 맞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든 시대적 요구든 자의가 아닌 시작도 그 첫발은 나로 인해 출발하고 결국 시작을 여는 것은 자신이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과정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2달 전부터 헬스장에서 천국의 계단이라는 계단 스테퍼 20분을 근육 운동 마무리로 추가했다. 이름부터 "천국의 계단" 누가 지었는지 정말 최고의 작명이다. 천국의 계단은 기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20분~25분, 한 사이클로 설정되어 있다. 이 한 사이클을 타고 오면 천국을 보고 내려온다. 또 이 속에 인생의 고난이 있다. 스테퍼에 올라가기 직전 수건과 물을 챙겨 기계 앞으로 다가갈 때의 기분은 정말... 한 걸음마다 10번씩 '오늘은 패스할까?'를 떠올린다. 그야말로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래! 오늘 직장에서 힘들었잖아. 그냥 가자'

'아니야! 이 운동하고 폐활량이 얼마나 좋아졌니? 하고 가.'

'방금 근육운동도 열심히 했으니 오늘은 충분해.'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야? 이 운동을 왜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봐.'

'천국을 보고 내려와야 하는 거 알지? 안 힘들어?'

'운동 후 머리가 상쾌해지는 걸 생각해 봐'


10초도 안되는 시간 머릿속은 그야말로 난리다. 2달 하고 나니 그래도 비교적 덜 소란스럽다. 루틴이라는 게 생겼기 때문이고 너무 힘들 것을 알지만 또한 끝내고 나면 좋아지는 기분도 알기 때문이다. 처음 한두 번 했을 때는 정말로 힘든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무리 운동인 계단을 오르고 싶지 않아서 운동하러 가기가 싫었다. 그럼에도 계속 올 수 있었던 것! 왜 내가 스테퍼를 하고 있는지 궁금한 분이 있다면... 브레인 포그라고 아시는지! 졸린 게 아닌데 머리가 뿌옇고 멍한 상태가 지속되는 증상을 단박에 단 1회로 고칠 수 있다. 한 번만 해보면, 20분 천국을 보고 내려오면 안개가 개인다.


천국의 계단에 시작 버튼을 누르면 바로 성공의 20분이 올까? 내 경험으로는 절대 아니다. 첫날의 고통은 5분부터 20분까지 계속이었고 30초마다 그만둘지 결정해야 했다. 숨은 턱까지 차서 마치 내 폐가 쪼그라들어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입으로 숨을 헐떡거리니 목이 마른다. 물을 마시니 그 잠깐의 호흡 멈춤이 마치 누가 숨을 막은 것처럼 한참을 몰아쉬게 만들었다. 2분마다 마시는 물로 호흡은 안정될 사이가 없었고 위 속에는 물이 가득 차서 한발씩 움직일 때마다 물의 출렁임이 느껴졌다. '10분까지만 하고 진짜 그만둘 거야.' 15분까지만 하고... 16, 17... 정말 겨우겨우 20분을 1초도 넘기지 않고 채웠고 기어내려왔다.


천국을 보고 내려오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패턴을 이해하게 되었고 숨이 덜 차는 방법을 알아갔으며 폐활량이 좋아졌다. 심지어 시작 전과 14분이라는 물 마시는 시간 루틴도 생겼다. 안정적인 적응된 스테퍼 운동에는 힘듦이 없을까? 수도 없이 할지 말지를 저울질하다 올라선 계단, 그 시작은 5분까지 비교적 평화롭다. 노래도 귀에 들어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다리의 고통이 느껴진다. 5분이 넘어가면 눈이 자꾸만 시계로 간다. 그때부터 또 1분만 더...의 시작이다. 특히나 5분에서 10분 사이는 다리에 고통이 심해지는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다. 육체적으로도 다리가 너무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소란스럽다. 헬스장에서 들리는 노래로 위기를 넘기곤 한다. '저 노래만 끝나면 돼...' 10분이 지나면 머릿속 혼란은 고요해진다. 힘들긴 하지만 다리 통증이 심해지는 구간을 지났다. 15분쯤 되면 머릿속에는 고요히 내 숨소리만 들리고 다리는 자동으로 움직인다. 주변의 소리도 줄어들어 약간 몽롱한 느낌이 된다. 여기가 천국이다. ㅎㅎㅎ 18분쯤 되면 기쁨이 몰려온다. "오~ 오늘도 해냈어!"

82층 1350계단!!


천국의 계단에 인생이 있다. 어떤 시작이든 편안함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맞서 불편하고 불안하고 두려움을 무릅써야 한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든 상관없이 삶의 과제에 대한 첫 도전은 두렵다. 앞이 캄캄하고 저 앞에 낭떠러지가 있을 것 같다. 한발 가고 뒤돌아보고 멈춰버리고 싶다가 다시 마음먹고 다음 발을 움직여나가야 한다. 자기와의 싸움에 진이 다 빠진다. 그러나 처음 성공한 천국의 계단처럼 가장 첫 성공은 좌충우돌 엉망진창인 대신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아 효능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될 시작에 작은 빛이 되어준다.


스테퍼 시작 후 5분, 할만한 시간은 새로운 시작에 의욕이 불끈거릴 때를 닮았다. 이때는 자신만만 아무런 걱정이 없다. 그러다 천국의 계단처럼 10분 넘어 점점 힘들어지는 구간을 만난다.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다 보면 온갖 잡생각이 든다. 이 길이 맞는 걸까?부터 시작해 머릿속의 잡념이 안 하고 싶은 핑계를 대며 스테퍼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15분을 넘어 고통의 정점을 찍은 사람만 천국을 보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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