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 키워드 : ~라는 세계
초등학교 3학년, 엄마가 산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은근슬쩍 흘린 내 희망선물은 언제나 문구였다. 부모님 두 분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비교적 공책, 연필, 메모지 등 문구가 풍족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내 문구 사랑은 첫 용돈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한결같다. 집에 나뒹구는 실용적인 부분만 충족한 문구가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초등 고학년 아껴 뭔가 살수 있는 만큼의 용돈을 받았을 때 달려갔던 곳은 당연히 문방구였다. 다른 친구들이 접시에 비닐을 씌워팔던 떡볶이를 먹을 때도 구슬이 달린 연필을 사기 위해 꾹 참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친구와 집 근처 독서실에 다녔다. 독서실 1층 작은 문구점이 있었다. 이틀에 한 번씩 들러 아저씨와 눈도장을 찍었다. 당연히 간식 살 돈을 아껴 필통을 사고 예쁜 케이스에든 메모지를 샀다. 24살, 서울에 편입을 하기 위해 올라왔다. 그리고 강남역 교보문구 핫트랙스를 처음 갔던 때가 생각난다. 처음 본 그곳은 현실감을 무디게 했다. 문구점에 들어가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서울이 집이라 모든 게 일상인 학원 친구는 시큰둥했고 친구의 재촉에 그 좋은 것을 두고 20여 분 만에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학원 수업이 적은 평일에 혼자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에 서점도 들르지 않고 문구 코너에서 3시간을 보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돈이 없어 단지 구경만 허락된 신세계였다. 그 후 강남역 교보는 내가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산책코스가 되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최소 2번 집 근처 교보문고에 들르지만 그때 돈도 없고 시간도 없던 시절, 시험에 떨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불안을 달고 살았던 안쓰러운 시간, 그곳은 모든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는 꿈같은 장소였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 먹고 혼자 교보 핫트랙스를 마치 재고관리라도 하는 양 한 바퀴 돌고 학원으로 갔다. 가끔 돈을 아껴 예쁜 쓰레기를 사긴 했지만 대부분이 눈 맞춤이었다. 문구는 내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 힘들던 시간을 견디게 해준 문구를 지금도 사랑한다. 돈을 벌면서 사랑은 소유적으로 변해갔다. 사고 싶은 것 을 다 살 수는 없었지만 꼭 사고 싶은 것을 못 살 이유는 없었다. 할 일이 많아지고 시간이 줄어들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제한이 생겼다. 그래서 집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옮겨 놓기라도 할 것처럼 야금야금 가져왔다. 성인이 되고 구입하는 다른 것에 비해 문구는 비교적 적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 지갑이 줄줄 세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예를 들자면 신발장에 내 신발은 4켤레가 있다. 여름 신발(뮬), 운동화, 검정 단화, 헬스장용 운동화가 전부다.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는 나간다. 나의 지향을 가족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신발이 많으면 지네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걸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펜이 많아서 지네다. 문구에 있어서는 맥시멀 그 자체다.
나이가 들면 그만 살줄 알았다. 40대가 되어서도 문구류 구경이 제일 좋을 줄은 몰랐다. 아직도 교보문고 제고 체크를 하러 다닐 줄이야... 문구라는 취미에도 어른을 위한 문구가 있었다. 그곳에 빠지면 안타깝게도 금전적으로도 소박한 취미가 되지 못한다. 나는 만년필도 좋아한다. 첫 만년필을 샀던 때가 기억난다. 저렴한 대중적인 브랜드 만년필을 사면서 내가 나를 알기 때문에 속으로 빌었다. '만년필은 나랑 안 맞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만년필이 풍기는 그 도도함이 좋았다. 관리해 주지 않아도 되는 볼펜과는 다르게 한 달씩 잊고 살면 만년필은 사용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살짝 종이를 긁는 만년필은 그 맛에 쓰고 부드러운 만년필은 쓸 일이 없어도 끄적이게 만든다. 길이 들면, 즉, 나와 한 몸이 되면 만년필 잉크를 번지게 하는 노트는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펜에는 섬세한 닙(펜촉)이 있고 가운데가 갈라져 있다. 글씨를 쓰기 위해 살짝 압력을 가하면 피드를 따라 올라온 잉크가 닙으로 흘러 종이에 균일한 양을 떨군다. 종이 위에 살짝 봉긋한 잉크도 아름답고 금세 스며드는 모습은 눈이 녹는 것 같다. 추가적인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고도 이토록 균일하게 잉크가 흐르게 하는 힘은 모세관현상이다. 만년필은 과학이다. 원리의 신비함과 손맛에 빠진 게 시작이라면 이후 그 외관에 끌리게 된다. 일상 전체를 심플과 블랙으로 일관되게 유지시켜오고 있지만 난 문구에 있어서는 화려함을 추구한다.
문구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스스로도 가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들어간 비용 생각이 날 때 그랬던 것 같다. 너무 사랑하는 문구지만 아주 친한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 잘못 드러냈다가 "아직?(그러고 사냐)"이라는 시선이나 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개미지옥이다. 끝이 없다. 이 바닥을 떠나지 않는 이상... 떠나고 나면, 사랑이 식고 나면 이보다 허무한 게 또 있을까?
말하기 부끄러우나 내가 빠져있는 문구는 만년필이 전부가 아니다. 제대로 좋아하는 품목은 연필, 노트가 있고 그밖에 마스킹 테이프, 스탬프, 만년필 잉크, 집게?가 있다. 아주 개인적인 소유, 소유적인 취미에도 미미한 사회적 연결고리가 있었다. 그게 나는 아니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은 겨우 구입하고 한참 지나 마음이 시들해지면 소비를 후회하며 기부 숍에 가져다주는 것이 전부였다. 말이 좋아 기부이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쓰지도 않고 그냥 두기에는 죄책감 들어 처리하고 싶었다. 이게 무슨 돈XX이냐고... 하지만 딸을 통해서 나의 이 개인적인 소비는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기도 했다.
딸을 잠깐 설명하자면 매우 정치적인 아이다. 현대 국가에서 의미하는 소수 권력적인 정치가 아니다. 같은 반 아이가 준비물이 없으면 챙겨줘야 하고 선생님도 포기하신 학습태도가 좋지 않은 반 친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진심으로 좋은 사회, 학교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정치적인 아이다.
이 아이가 1학년, 가방이 거북이 등딱지만큼 커다랗게 아이를 덮고 다니던 꼬꼬마 시절의 이야기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내 곁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냐는 말에 며칠 전 학교에서 친구가 딸이 제일 좋아하는 연필을 빌려 가서 돌려주지 않았고... 오늘 돌려달라고 했더니 그 연필이 어디 있는지도, 빌렸다는 기억도 없었단다. 본인 이름이 인쇄된 나름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물건이라서 속상했던지 눈에서 그렁그렁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방금 하교한 가방 속 선생님이 주신 안내장을 챙기면서 아이의 필통을 열어봤더니 연필이 한 자루, 지우개 반개가 필통 한쪽 구석에 놀다 들킨 아이처럼 빼꼼 놓여있었다.
"왜 이것만 있어?" "연필은 친구들 빌려줬고 지우개 없는 친구가 있어서 반쪽 줬어."
네 것을 철통같이 지키라고 할 수도 없고 방법을 찾다가 둘이 머리를 굴려 방책을 마련했다. 집에 넘쳐나는 내 흥미를 잃은 필기구를 매일 2자루씩 가져 다니기로 했다. 빌려주는 연필은 돌려주지 않아도 속상해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딸로 인해 내 죄책감도 조금 가벼워졌다. 그 어떤 충고보다 딸의 행동은 내 마음의 울림을 주고 가치의 변화를 가져왔다.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사회 속에서의 나, 내 소비, 내 취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줬다.
취미는 변한다. 벌써 6년도 전에 홈 패션을 배워 온 집을 내가 만든 것으로 씌우던 미싱을 이제는 꺼내지 않은 지 오래다.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의 관심사는 계속 바뀐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는 변화 성장하고 주변의 상황도 달라진다. 취미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바뀔 때마다 지나친 소비를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내 문구에 대한 관심도 한결같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연필에 빠져 쓰지도 않을 연필을 보관용으로 12개 1다스째, 한 번 살 때 10개씩 샀다. 아인슈타인이 썼다는 연필을 구입하고 그가 썼다던 노트로 눈길을 돌렸다. 다음은 펜... 관심이 옮겨가면 이미 집에 있는 이전의 관심사는 짐이 되어갔다. 공간을 차지했고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 낭비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건은 자원이 들어간다. 자원은 유한하고 우리는 우리와 미래를 위해서 물건의 쓰임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 사랑에 절제가 필요하다.
나는 문구 덕후다. 초등학교 문방구에서 처음 봤던 예쁜 연필부터 지금까지 문구를 좋아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바로 떠오르는 것도 역시 '문구'다. 수집이 아니라 사랑과 사용을 위한 취미생활로 그 지향을 바꿔봐야겠다. 수집이라는 방법은 날 위한 것이었으나 결국 날 위한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교보문고 핫트랙스를 내 컬렉션이라 생각하고 질 좋은 꼭 사용할 문구만 구입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집을 한번 엎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