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나의 여행 계획을 알게 된 몇 명에게서 '프랑스 여행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익숙하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왔다는 건 길어도 한 달이 되지 않는 기간 그곳에 머무른 게 전부였을 텐데 그리울 수 있을까? 내 상식에 그리운 것은 오래된 것들 뿐이었다.
'엄마가 그립다. 고향이 그립다.'
거기다 여행 가기 전에 정보를 통해서 블로그에서 만난 프랑스는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세계에서 소매치기가 제일 많다는 글을 봤다. 유튜브 영상에 공항에서 케리어 통째로 들고 도망가버리는 소매치기 무리의 영상까지 봤다. 남편 없이 딸을 책임져야 하는 나로서는 공포였다.
파리에서 가이드와 동행할때 장소, 식당을 방문했을 때마다 소지품 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었다. 함께 여행하던 분은 파리가 두 번째라는 말과 함께 지난번 파리에서 있었던 소매치기 이야기를 해주셨다. 가장 치안이 좋지 않은 지하철을 탔을 때 한 손으로 크로스가방을 잡고 있었는데 외국인 한 명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고 했다. 한 명이 말을 걸 때 손이 쓱 다가와 가방 지퍼를 열려고 시도했고 깜짝 놀라 "NO!!!" 크게 외치니 사람들에 섞여 내려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도무지가 그리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운 게 문제가 아니라 무사히 잘 끝내야 하는 미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미션은 아무 문제 없이 끝났다!
인천공항에 발이 닿자마자 그리웠다. Paris~
내가 이 말을 하게 될 줄이야... 그리웠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뭐가 그리울까?
어디로 눈을 돌려도 6층 높이의 같은 간격 비슷한 형태의 집이 골목길조차 없이 마치 한 건물인양 붙어 길을 정돈되 보이게 하는 통일감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딜 둘러봐도 눈을 피곤하게 할 네온사인이나 독특하게 혼자 뽐내며 솟아있는 건물은 없었다. 길의 코너마다 우리의 편의점이 있을 자리마다 예쁘게 꾸며진 카페가 있고 테라스에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한입에 꿀꺽할 수도 있을 양이 담긴 에스프레소를 한나절 마시고 있는 그 여유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30~40분만 걸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파리 시내, 과거에 마차 다니던 네모로 수놓아진 돌바닥이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장소를 이동할 때 걸어가는 길에 센강이나 공원이 있었다. 걷는행위 자체가 힐링이었다. 센강을 따라 걷다 무심코 건너는, 하지만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유람선이 다 지나갈 때까지 손 흔들며 서로의 여행을 환영하는 인사가 그리웠다. 센강을 따라 걸으며 수도 없이 찍었던 거기가 거기인 것 같은 고풍스런 건물과 딸과 매번 다른 모습으로 배경이 되어준 하늘이 그리웠다. 강옆으로 뻗어있는 비만 안 오면 열리는 중고책 파는 초록색 갑판? 에 흔들리는 종이들이 그리웠다. 하루에 2~3만보씩 걸으며 이동하던 길에서 딸과 나눴던 하나도 바쁘지 않은 오롯한 지금의 이야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하루에 5유로만 있으면 고소한 바게트 빵과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행복하다던 파리지앵이 부러웠다. 파리는 다녀간 사람의 마음을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도시다.
어느새 5일 만에 파리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파리를 떠나며 파리를 마음에 담았다. 여행으로 잠시 다녀온 곳이 아니라 반드시 언젠가는 다시 찾을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