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14화 무중력의 수영장, 물속의 심장 소리

by Wren

밤새 공책은 침묵했다.
하온은 잠들지 못했다. 스텔스 로봇을 책상 위에 세워두고, 공책을 무릎 위에 펼쳐둔 채, 붉은 눈이 다시 켜지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조운의 글씨도, 왼손의 온기도, 어떤 신호도.
조운이 깡패들이 있는 골목으로 달려 들어간 그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끊어졌다. 하온은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불길한 예감은 어둠 속에서 더 짙어졌다.
아버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멱살을 쥐고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거기로 뛰어들었다.
그다음이 없었다.
알람은 아침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겨울방학 수영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하온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이미 몸을 일으켰다. 수영 가방을 챙기고, 공책을 가방 멘 아래 깊숙이 넣었다. 손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현관을 나서는 순간, 안방에서 아빠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하온은 멈추어 서서 귀를 기울였다. 기침 소리가 한 번 더 났다가 잠잠해졌다. 하온은 문고리를 잡은 채 생각했다. 아빠가 지금 저 방에서 자고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1988년의 그 밤은 어떤 식으로든 지나갔다는 것을. 아빠가 살아있으므로.
하지만 어떤 흉터를 남기고 끝났는지가 문제였다.
겨울 아침의 중곡동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밤새 켜져 있던 가로등 불빛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수영장 건물에 다다르자 유리문 너머로 파란 물빛이 새어 나왔다. 하온은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문을 밀었다.
물속은 언제나 바깥과는 다른 세계였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온은 이 명확하고 깨끗한 냄새를 좋아했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이 인공적인 냄새가 위안이 되었다. 여기 들어오면 바깥의 시간들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것 같았다.
준비 운동을 마친 하온이 풀장 끝에 섰다. 물이 파랗고 고요했다.
뛰어들었다.
물이 온몸을 감쌌다. 중력이 사라졌다. 수면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느려지고, 모든 것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졌다. 물속에서 첫 번째 발차기를 내딛는 순간, 세상과 잠시 완벽하게 단절되는 그 감각.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호흡을 참고 물살을 가르는 순간, 수영장 바닥의 파란 타일이 일렁임과 동시에 왼 손목이 뜨거워졌다.
물속이었다. 물은 차가웠다. 그런데 오직 왼 손목만, 마치 시뻘건 불덩이에 닿은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하온은 반사적으로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환상이 아니었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선명하게 아팠다.
이어서 소리가 들렸다.
물속인데 소리가 들렸다.
퍽. 퍽.
둔탁한 소리였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드러운 살에 부딪히는 소리. 몸이 맞는 소리였다. 누군가 처참하게 얻어맞는 소리였다.
하온은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수면 위로 솟구쳤다.
거친 공기가 폐로 밀려 들어왔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가득 채워야 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냄새가, 찰나의 순간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비릿했다. 녹슨 쇠와 짐승의 피가 섞인 냄새. 마장동 우시장의 냄새보다 더 날카롭고 역겨운 냄새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매캐한 흙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1988년 뒷골목의 흙냄새였다.
하온은 헉헉거리며 풀장 벽을 부여잡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뛰었다. 냄새는 1초 만에 사라지고 다시 소독약 냄새만 남았다. 하지만 방금 것은 분명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하온의 코는 시공간을 뚫고 넘어온 1988년 골목의 공기를 마셨다.
"하온아, 어디 아파? 안색이 왜 그래."
코치 선생님의 목소리에 하온은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풀장 밖으로 나왔다. 타일 위로 뚝뚝 물을 흘리며 라커룸으로 달렸다. 수건으로 몸을 닦을 새도 없었다.
젖은 손으로 가방 지퍼를 열었다. 공책을 꺼냈다.
펼쳤다.
글씨가 있었다.
조운의 왼손 글씨였다. 하지만 평소의 그 유려하고 정갈한 글씨가 아니었다. 선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어떤 글자는 종이가 파이도록 세게 눌려 있었고, 어떤 글자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했다.
그리고 그 엉망인 글씨 위로, 갈색 얼룩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흙이었다. 그리고 피였다.
하온은 젖은 입술을 깨물며 문장을 읽었다.
— 하온아.
아버지가 숨을 안 쉬어.
어떡해. —
라커룸은 고요했다. 구석의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울렸다. 하온은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왼 손목이 여전히 불타듯 아팠다. 물속에서 들었던 그 둔탁한 파열음이 귓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하온은 미친 듯이 가방을 뒤져 연필을 쥐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젖은 왼손으로 공책 위에 글씨를 썼다. 종이가 물기에 젖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 아빠. 나 여기 있어. 아버지 가슴이 뛰는지 확인해. 귀 대봐. 당장 119 불러야 해. 아빠, 제발! —
연필을 쥔 손등 위로 툭, 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물방울은 하온이 쓴 글씨 위로 투명하게 번져갔다.
하온은 공책을 가슴에 꽉 끌어안았다. 눈을 감았다.
수영장 밖에서는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2025년의 아침이 시작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하온은 그 소리들 너머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를 안고 울부짖는 열한 살 소년의 짐승 같은 비명을 듣고 있었다.
제발.
그것이 하온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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